
굴비에게(정호승)
부디 너만이라도 비굴해지지 말기를
강한 바닷바람과 햇볕에 온몸을 맡긴 채
꾸덕꾸덕 말라가는 청춘을 견디기 힘들지라도
오직 너만은 굽실굽실 비굴의 자세를 지니지 않기를
무엇보다도 별을 바라보면서
비굴한 눈빛으로 바라보지 말기를
돈과 권력 앞에 비굴해지는 인생은 굴비가 아니다
내 너를 굳이 천일염에 정성껏 절인 까닭을 알겠느냐
▶시 <굴비에게>는 일상의 사물을 통해 고결한 삶의 태도를 일깨우는 아주 묵직한 울림을 주는 작품입니다.
1. 시 논평: 비굴함에 맞서는 꼿꼿한 자존심
이 시는 세상의 풍파(바닷바람과 햇볕)를 견디며 몸이 말라가는 고통 속에서도, 결코 '비굴함'에 무릎 꿇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노래합니다.
단순히 생선 한 마리를 말리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돈과 권력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서 얼마나 쉽게 '굽실굽실'하게 되는지를 날카롭게 성찰하게 합니다. "비굴해지는 인생은 굴비가 아니다"라는 일침은, 존재의 가치는 외적인 화려함이 아니라 내면의 단단함에서 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 왜 하필 '굴비'였을까?
작가가 수많은 사물 중 왜 '굴비'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핵심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굽어지지 않는 형태적 특징: 굴비는 엮어서 말릴 때나 상에 오를 때, 그 형태가 비교적 곧고 단단합니다. 작가는 이를 '비굴하게 굽히지 않는 기개'와 연결했습니다.
►인고의 과정: 굴비는 살아있는 생선이 거친 바닷바람과 뜨거운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서서히 말라가는 '고행'의 과정을 거쳐 탄생합니다. 이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뎌내는 인간의 삶과 닮아 있습니다.
►언어유희 (굴비 vs 비굴): 이 시의 가장 재치 있는 부분입니다. '굴비'라는 단어의 글자 순서를 바꾸면 '비굴'이 됩니다. 작가는 이 언어적 유사성을 이용해 "굴비는 절대로 비굴해서는 안 된다"는 역설적인 메시지를 강화했습니다.
3. 시에 사용된 주요 표현 기법
►의인화 (Personification): 굴비를 '너'라고 부르며 인격을 부여했습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시적 대상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되고, 마치 나 자신에게 하는 충고처럼 느끼게 됩니다.
►반복법 (Repetition): '~말기를'이라는 어미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간절한 소망과 단호한 의지를 강조했습니다.
►대조법 (Contrast): '강한 바닷바람/햇볕'이라는 시련과 '별'이라는 이상을 대비시켰습니다. 또한 '굽실거리는 비굴함'과 '천일염에 절여진 단단함'을 대조하여 주제를 선명히 드러냅니다.
►설의법 (Rhetorical Question):</u> 마지막 행 "까닭을 알겠느냐"라는 질문 형식을 통해 독자에게 깊은 여운과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드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한 줄 평: 이 시는 비굴함(卑屈)의 반대말이 바로 굴비(屈非)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짠 소금에 절여질지언정 영혼만은 별을 향해 꼿꼿이 세우라는 준엄한 꾸짖음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꾸덕꾸덕" "굽실굽실" 의태어 사용이 두드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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