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화빵을 굽는 사내(정호승)
당신은 눈물을 구울 줄 아는군
눈물로 따끈따끈한 빵을 만들 줄 아는군
오늘도 한강에서는
사람들이 그물로 물을 길어 올리는데
그 물을 먹어도 내 병은 영영 낫지 않는데
당신은 눈물에 설탕도 조금은 넣을 줄 아는군
눈물의 깊이도 잴 줄 아는군
구운 눈물을 뒤집을 줄도 아는군
▶정호승 시인의 <국화빵을 굽는 사내>입니다.
슬픔이라는 차갑고 축축한 감정을 '빵'이라는 따뜻하고 바삭한 존재로 치환하는 과정이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죠.
1. 시의 논평: 슬픔을 굽는 연금술
이 시는 삶의 비애(눈물)를 외면하거나 단순히 슬퍼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구워내어 타인에게 위로가 되는 음식(국화빵)으로 만들어내는 '승화'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화자는 단순히 빵을 파는 장사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고단한 삶의 눈물을 모아 따뜻한 온기로 바꾸는 '생활의 예술가'를 발견합니다. 슬픔에 설탕을 넣고, 그 깊이를 재며 뒤집는 행위는 고통을 다스려 달콤한 위안으로 바꾸는 성숙한 삶의 태도를 상징합니다.
2. 시적 기법: 감각의 전이와 상징
►물성(物性)의 변화: 액체 상태인 '눈물'을 고체인 '빵'으로 변화시키는 설정을 통해, 보이지 않는 감정을 구체적인 사물로 형상화했습니다.
►대조적 공간: '한강'이라는 거대하고 차가운 공간과 국화빵을 굽는 '따끈따끈한' 철판 위의 공간을 대비시켜 위로의 밀도를 높였습니다.
►반복법: "~줄 아는군"이라는 종결 어미를 반복하여 사내의 숙련된 솜씨와 그에 대한 화자의 경탄을 리듬감 있게 표현했습니다.
3. "그물로 물을 길어 올리는데"의 역설적 의미
이 구절은 이 시에서 가장 날카로운 역설(Paradox)이자 부조리를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헛수고와 갈증: 원래 그물은 물고기를 잡는 도구이지 물을 담는 도구가 아닙니다. 그물로 물을 길어 올리려는 행위는 성취할 수 없는 욕망이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허망한 삶을 의미합니다.
►군중의 고독: 한강(세상)에서 수많은 사람이 무언가를 얻으려 애쓰지만(그물질), 결국 본질적인 갈증(병)을 채우지 못하고 헛된 수고만 반복하는 현대인의 초상을 보여줍니다.
►양적인 삶 vs 질적인 삶: 거창한 한강에서 그물질하는 사람들(양적 욕망)은 화자의 병을 고치지 못하지만, 보잘것없는 길가에서 눈물을 굽는 사내(질적 위로)는 화자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4. 이 역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역설은 우리에게 "당신은 지금 무엇으로 삶을 채우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세속적 노력의 한계 인정: 세상이 제시하는 거창한 방법들(그물로 물을 긷는 행위)이 때로는 아무런 실속 없는 허무한 몸짓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슬픔의 직면: 물(한강)을 통째로 소유하려 하기보다, 내 안의 작은 눈물을 인정하고 그것을 '굽는' 구체적인 행위가 삶을 치유하는 데 더 효과적임을 말해줍니다.
►치유의 본질: 화자의 병이 낫지 않는 이유는 물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물을 '따뜻하게 구워줄' 온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역설은 차가운 논리(그물)보다 따뜻한 공감(국화빵)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결국 이 시는 우리에게 "당신의 눈물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설탕을 조금 넣어 따뜻하게 구워보라"는 다정한 권유를 건네고 있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특유의 따뜻하고 서정적인 문체로 소외된 이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시를 많이 쓰셨는데, 이 시 역시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슬픔'을 '빵'으로 구워낸다는 설정은 정호승 시인 특유의 '슬픔의 미학'이 잘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정호승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슬픔(눈물)이 단지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안(국화빵)이 될 수 있음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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