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바람 난 년들(권나현)
보소! 자네도 들었는가? 기어이 아랫말 매화년이 바람이 났다네
고추 당초보다 매운 겨울살이를 잘 견딘다 싶더만
남녘에서 온 수상한 바람넘이 귓가에 속삭댕께 안 넘어갈 재주가 있당가?
아이고~ 말도 마소! 어디 매화년 뿐이것소
봄에 피는 꽃년들은 모조리 궁딩이를 들썩대는디
아랫말은 난리가 났당께요
키만 삐쩡 큰 목련부터
대그빡 피도 안 마른 제비꽃년들 까정 난리도 아녀라
워매 워매 ~ 저그 진달래 년 주딩이 좀 보소?
뻘겋게 루즈까정 칠했네 워째야 쓰까이 ~
참말로 수상한 시절이여 여그 저그 온 천지가 난리도 아니구만 그려 ~
워쩔수 없제 잡는다고 되것어 말린다고 되것어
암만 고것이 자연의 순리라고 안혀라
보소 시방 이라고 있을때가 아니랑게
바람난 꽃년들 밴질밴질 한 낮짝 이라도 귀경할라믄
우리도 싸게 나가 보드라고...
이미지 속의 구수한 전라도 방언 시 <봄바람 난 년들>을 쓴 권나현 시인에 대해 궁금하시지요!
권나현 시인은 세련된 표준어보다는 우리네 이웃의 숨결이 담긴 투박한 사투리를 통해 삶의 해학과 정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권나현 시인의 특징
1. 사투리의 미학
권나현 시인의 가장 큰 특징은 전라도 방언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점입니다. 텍스트로 옮겨드린 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꽃이 피는 자연 현상을 "바람난 년들"이라고 표현하거나 "주딩이에 루즈 칠했다"고 묘사하는 등, 자칫 비속어처럼 들릴 수 있는 표현을 생명력 넘치는 해학으로 승화시킵니다.
2. 자연과 인간의 동질화
그녀의 시에서 꽃과 나무는 단순히 구경거리가 아닙니다. 우리 곁에 사는 '말 많은 아줌마'나 '철없는 가시내'처럼 의인화되어 나타납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자연을 멀리 있는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웃고 떠드는 삶의 공동체로 느끼게 됩니다.
3. '시방'과 '귀경'의 정서
작품 전반에 흐르는 정서는 "시방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랑게"라는 구절처럼, 오늘 지금 이 순간의 생동감을 즐기자는 낙천성입니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꽃 한 송이 피는 것에 호들갑을 떨며 구경 가자는 제안은 현대인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웃음을 줍니다.
▶주요 활동 및 평가
권나현 시인은 화려한 문단 경력보다는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대중적인 사랑을 먼저 받기 시작했습니다.
어렵고 난해한 현대시와 달리, 소리 내어 읽으면 마치 판소리 한 대목을 듣는 것 같은 리듬감이 있어 낭송용 시로도 인기가 많습니다.
대표작으로는 <봄바람 난 년들> 외에도, 가을의 정취를 담은 <가을 바람 난 년들> 등이 있어 계절마다 회자되곤 합니다.
"암만 고것이 자연의 순리라고 안혀라"
시 속의 한 구절처럼, 권나현 시인은 억지로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삶의 결을 가장 잘 포착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나현 시인의 전매특허인 구수한 전라도 방언이 돋보이는 <가을바람 난 년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봄편에서 꽃들이 "루즈 칠하고" 난리였다면, 가을편에서는 단풍과 갈대들이 어떤 난리를 피우는지 읽어보시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가을바람 난 년들 (권나현)
보소! 자네도 들었는가?
기어이 가을바람이 났당게.
매몰차게 몰아치던 복더위 잘 견딘다 싶더만
북녘에서 온 수상한 바람놈이 귓가에 속삭댕께
안 넘어갈 재주가 있당가?
아이고~ 말도 마소!
어디 산자락 단풍년 뿐이것소.
들녘에 핀 코스모스 가시내들은 모조리 궁딩이를
들썩대는디 온 천지가 난리가 났당께요.
대그빡 허옇게 센 억새년들부터
발그레하게 볼때기 붉어진 감나무년들까정
난리도 아녀라.
워매 워매~ 저그 은행나무 년 좀 보소?
노랗게 치마까지 갈아입었네.
워째야 쓰까이~ 참말로 수상한 시절이여.
여그 저그 온 천지가 난리도 아니구만 그려~
워쩔 수 없제. 잡는다고 되것어, 말린다고 되것어.
암만 고것이 자연의 순리라고 안 허요.
보소! 시방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랑게.
바람난 가을년들 화려한 옷자락이라도 구경할라믄
우리도 싸게 나가 보드라고...
▶감상 포인트
►색채의 대비: 봄에는 '빨간 루즈(진달래)'였다면, 가을에는 '노란 치마(은행나무)'와 '발그레한 볼때기(감)'로 비유한 점이 절묘합니다.
►세월의 비유: 머리가 하얗게 센 노년을 **'허연 억새'**에 비유하며, 나이와 상관없이 가을바람에 설레는 마음을 해학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권유의 미학: 마지막에 "싸게 나가 보자"며 등을 떠미는 대목은 고단한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자연을 즐기라는 시인 특유의 따뜻한 오지랖(?)이 느껴집니다.
봄과 가을, 두 편을 비교해 보니 시인의 시선이 참 일관되면서도 정겹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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