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약으로 은수저 닦기(박도진)
은수저가 있다고 부자집은 아닙니다.
어머니의 유품이 수저가 되어
오늘도 내 입에
따뜻한 밥 한 숟갈을 떠 줍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갈 은수저인데
막내아들 가족이
“생일 축하하러 간다”는
한마디를 남기는 순간
집안에 작은 전쟁이 시작됩니다.
냄비에서는 국이 끓고
프라이팬에서는 전이 익고
대청소한 방바닥은
괜히 더 눈에 거슬립니다.
마지막 남은 임무는
은수저를 치약을 짜서 박박 문지르는 일.
손님이 오기 전부터
나는 이미 생일 케이크보다 먼저
녹초가 되어 있습니다
생일이란
호강받는 날이 아니라
몸살을 예약하는 날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반짝이는 은수저 위로
어머니의 웃음이 희미하게 비쳐 보이니까요.
한번쯤
치약으로 은수저를 닦아 보십시오.
추억이 먼저 번쩍거릴지도 모르니까요.
▶이 시는 소박하면서도 가슴 뭉클한 생활의 정서가 잘 담겨 있습니다. '은수저'라는 사물을 통해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자식을 맞이하는 부모의 지극한 마음을 대비시킨 점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시평: 일상의 노동 속에 피어난 효심과 사랑
이 시의 가장 큰 매력은 '치약으로 은수저를 닦는 행위'라는 구체적인 일상에서 출발한다는 점입니다.
상징성: 은수저는 단순한 식기 이상의 존재입니다. 어머니의 유품이자, 대물림되는 사랑이며, 손님(자식)을 맞이하는 정성의 결정체입니다.
공감대: 생일날 주인공이 되기보다 자식들을 위해 몸살이 나도록 준비하는 부모님의 모습은 한국적인 정서를 깊게 건드립니다.
반전의 묘미: 육체적인 피로(녹초)를 '어머니의 웃음'과 '번쩍이는 추억'으로 승화시킨 마지막 대목이 시적 여운을 줍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자식을 기다리는 그 마음이 은수저처럼 반짝이는 참 따뜻한 시였습니다.
'나의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꽃 (김춘수) (2) | 2026.04.08 |
|---|---|
| 봄바람 난 년들(권나현) (0) | 2026.04.07 |
|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종해) (0) | 2026.04.06 |
| 행복(유치환) (0) | 2026.04.05 |
| 내가 백석(白石)이 되어- 백석과 자야·2 / 이생진 (1) | 2026.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