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단순히 연인을 기다리는 연가(戀歌)를 넘어,
'기다림'이라는 수동적인 행위를 '마중'이라는 능동적인 행위로 승화시킨 현대시의 걸작입니다.
이 시에 대한 논평과 황지우 시인 특유의 시 창작 방법론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시 논평: 기다림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다
이 시의 가장 아름다운 지점은 역설적인 태도의 변화에 있습니다.
기다림의 고통과 설렘: 시의 전반부에서 화자는 작은 소리(발자국, 나뭇잎)에도 가슴이 뛰는 극도의 긴장 상태에 있습니다.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히는" 과정은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기다림의 본질을 날카롭게 포착합니다.
수동성에서 능동성으로: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라는 대목에서
시적 반전이 일어납니다. 앉아서 기다리는 것(기다림)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상대를 향해 달려가는 것(가고 있음)으로 변모합니다.
확장된 의미: 여기서 '너'는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있지만, 황지우 시인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80년대)을 고려하면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민주주의'나 '새로운 세상'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올 것을 믿기에 내가 먼저 마중 나가는 의지적 태도를 보여줍니다.
2. 황지우의 시 쓰는 방법: '해체'와 '일상성'의 미학
황지우 시인은 한국 시단에서 '해체시'의 선구자로 불립니다. 그가 시를 쓰는 방식에는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① 파격과 해체 (Deconstruction)
그는 시의 정형화된 틀을 깨뜨립니다. 신문 광고, 일기예보, 약도, 만화 등 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파격적인 소재를 시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방법: 기존의 시적 언어가 세상을 다 설명할 수 없다고 믿기에, 일상의 파편들을 수집하고 재조합하여 현실의 모순을 폭로합니다.
② 감각의 구체화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서 보이듯, 추상적인 '그리움'을 '쿵쿵거리는 발자국 소리'나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같은 구체적인 청각과 촉각으로 변환합니다.
방법: 독자가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몸으로 먼저 느끼게 만드는 감각적 묘사를 중시합니다.
③ 일상적 언어 속에 숨겨진 철학
그는 어려운 한자어나 관념적인 단어 대신, 우리가 흔히 쓰는 쉬운 말을 사용합니다.
방법: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처럼 일상적인 독백의 어조를 사용하여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면서도, 그 안에 존재론적인 성찰을 담아냅니다.
④ 기다림과 응시의 미학
그는 대상을 서둘러 정의하지 않고 집요하게 응시합니다.
방법: 대상이 오지 않는 결핍의 상태를 견디며, 그 결핍 속에서 대상의 소중함을 발견해내는 '역설적 사유'를 즐겨 사용합니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이 구절처럼 황지우의 시는 누구나 겪어본 보편적인 감정에서 시작해, 그것을 시대와 역사, 혹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질문으로 확장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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