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탐의 끝판왕(박도진)
소의 갈비 사이
조용히 붙어 자란 살 한 점.
불 위에 올리면
지방이 녹아 흐르며
늦은 향기를 피워 올린다.
냉장고 세 대가 벽처럼 서 있는 집,
비닐봉지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른 채
삼 년을 지나온 것들.
그 물건들이 아내의 손을 건너
우리 집 식탁으로 조용히 흘러들어온다.
허기에 찬 배를 안고
비닐 속 고기를 바라본다.
유효기간을 두 해나 지나온 고기,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마음이
불 위로 올려 보낸다.
된장국과 밥으로 조용히 살던 뱃속이
질긴 육질에 놀랐는지
속이 둔탁하게 부풀어 오른다.
소화제 대신
명절에 받은 배를 깎아 먹고
콜라까지 들이켜 보지만
더부룩한 밤은 풀리지 않는다.
결국 한밤중
공원 산책길을 한 시간 넘게 맴돌며
배 속의 어둠을 달랜다.
덩치 작은 몸속에도
무서운 짐승 하나 숨어 있다.
고개를 들었다 잘려도
또다시 고개를 드는 것,
메두사의 뱀처럼 비웃으며 되살아나는 것
그 이름은 아마도 식탐일 것이다.
시 <식탐의 끝판왕>은 일상적인 소재인 ‘냉장고 속 오래된 고기’를 통해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그 뒤에 숨은 서늘한 집착을 날카롭게 포착한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이 시에 대한 비평적 논평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소재의 확장성: 생활 밀착형 공포와 욕망
이 시의 가장 큰 미덕은 ‘냉장고’라는 현대인의 일상적 공간에서 철학적 통찰을 끌어냈다는 점입니다.
세 대의 냉장고: 이는 단순한 가전제품이 아니라, 채우고도 더 채우려는 현대인의 과도한 소유욕을 상징하는 벽처럼 묘사됩니다.
3년 된 비닐봉지: 잊혔던 과거의 욕망이 현재의 식탁으로 ‘흘러들어오는’ 과정은 마치 유물이나 혹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듯한 긴장감을 줍니다.
2. 감각적 대비: 향기와 둔탁함
시각과 후각, 그리고 촉각의 대비가 훌륭합니다.
초반부: ‘지방이 녹아 흐르며 피워 올리는 향기’는 식탐을 자극하는 유혹적인 이미지입니다.
후반부: 하지만 그 실체는 ‘유효기간을 두 해나 넘긴 질긴 육질’이며, 결과적으로 ‘둔탁하게 부풀어 오른 속’이라는 불쾌한 감각으로 변이됩니다.
역설: 미식(美食)을 추구하는 듯 시작했으나, 결국 유통기한 지난 고기를 버리지 못하는 ‘미련’과 ‘허기’가 뒤섞인 식탐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3. 상징과 은유: 식탐의 신화적 형상화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결말부의 비유입니다.
무서운 짐승: 작가는 배 속의 거북함을 단순히 소화불량으로 치부하지 않고, 몸 안에 숨어 있는 ‘짐승’으로 의인화합니다.
메두사의 뱀: 식탐을 메두사의 머리카락(뱀)에 비유한 것은 탁월한 선택입니다. 잘라내도(배탈이 나고 고생을 해도) 다시 고개를 드는 인간의 본능적 탐욕을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4. 전체적인 감상
이 시는 **‘아깝다는 마음’**과 **‘먹고 싶다는 욕망’**이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비극적 희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늦은 밤 공원을 산책하며 ‘배 속의 어둠’을 달래는 화자의 모습은, 문명화된 인간의 외피 속에 여전히 통제되지 않는 야성적 욕망(식탐)이 도사리고 있음을 고백하는 성찰적인 뒷모습으로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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