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의 거짓말 (이성룡)
봄날 늦은 아침
시장에 다녀온 아내가
볼록한 시장바구니를 내려놓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시장에 아무 것도 없더라고
푸른 고등어 몇 마리와
꼬막 주꾸미 콩나물 한 움큼
무와 파를 무작위로 꺼내면서
무슨 놈의 시장이
먹을 게 하나도 없더라고
연신 구시렁거린다
시장은 도대체
내 착한 아내에게 무엇을 숨겼던 것일까
(시집 ‘오래된 부부’, 밥북, 2025)
▶이성룡 시인의 「아내의 거짓말」은 일상의 아주 사소한 순간을 포착해 부부 사이의 정감과 삶의 비애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2025년 출간된 시집 『오래된 부부』의 성격을 아주 잘 보여주는 시이기도 하죠.
이 시에 대한 논평과 시인이 시를 구성한 구체적인 방법(창작 기법)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시 논평: ‘반어’ 속에 담긴 사랑과 삶의 무게
이 시의 핵심은 제목에 등장하는 ‘거짓말’에 있습니다. 아내는 "먹을 게 하나도 없다"고 투덜대지만, 정작 바구니에서는 고등어, 꼬막, 주꾸미, 콩나물 등이 끊임없이 나옵니다.
반어적 미학: 아내의 투덜거림은 시장에 물건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마땅히 살 만한 물가’가 아니거나 ‘가족에게 더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욕심’에 비하면 늘 부족하다는 고단한 살림꾼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남편의 따뜻한 시선: 시인은 아내의 불평을 "왜 거짓말하느냐"고 다그치지 않습니다. 대신 "시장은 도대체 내 착한 아내에게 무엇을 숨겼던 것일까"라며 아내의 편을 들어줍니다. 이는 오랜 세월 함께 산 부부만이 공유할 수 있는 깊은 신뢰와 연민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일상의 발견: 특별한 사건이 아닌, 장바구니를 풀어놓는 일상적 행위에서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구체적인 사물(고등어, 콩나물 등)을 통해 형상화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2. 시인이 시를 쓴 방법 (창작 기법)
이성룡 시인은 이 시를 쓸 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효과적인 장치를 사용했습니다.
① 구체적인 열거를 통한 대비
시인은 단순히 "아내가 장을 봐왔다"고 하지 않고 고등어, 꼬막, 주꾸미, 콩나물, 무, 파 등을 구체적으로 나열합니다. 이렇게 풍성한 식재료의 목록과 "먹을 게 하나도 없다"는 아내의 대사를 대비시킴으로써, 아내의 말이 사실(Fact)이 아닌 정서적 토로(Feeling)임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② 관찰자적 시점과 공감의 결합
시인은 아내의 행동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관찰자의 입장을 취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행에서 "내 착한 아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객관적 관찰을 주관적 애정으로 전환합니다. 아내의 투덜거림을 '불평'이 아닌 '가족을 향한 책임감'으로 해석해내는 시인의 시선이 이 시를 완성하는 힘입니다.
③ 일상어의 시적 활용
'볼록한', '푸념', '구시렁거린다'와 같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토속적인 단어들을 배치하여 시적 상황을 생생하게 재현했습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마치 자신의 집 거실에서 일어나는 풍경처럼 느끼게 만드는 현장감을 부여합니다.
④ 질문을 던지는 마무리 (열린 결말)
"시장은 무엇을 숨겼던 것일까"라는 질문으로 시를 끝맺습니다. 이는 독자에게 '진정으로 아내가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더 넉넉한 형편이나 가족의 건강, 혹은 보상받고 싶은 마음 등)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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