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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걸으면(박도진)
이 길을 걸으면
문득 묘한 감정이 마중 나온다
가슴속 삐걱이는 낡은 문을 열고
차이콥스키의 선율 한 자락 흐르는 듯
여섯 해를 닳도록 밟았던 길,
이제 펭귄마을을 찾은 낯선 이들은
그저 풍경 하나로 스쳐 지나가지만
교정 터에 들어선 아파트 숲 사이로
까까머리 소년은
여전히 책가방을 들고 서 있다
등굣길,
나란히 걷던 여고생들의 그림자와
수줍게 엇갈리던 눈빛이
예순 해 세월을 건너 한꺼번에 밀물진다
기념각 교회는 예전 그대로이고
매화는 다시 제 향기를 틔우건만
차마 되돌릴 수 없는 것은
그 시절 맑고도 애잔한 마음자리뿐
오늘도 이 길을 걷는다
세월의 저편에서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을
소년의 숨결을 가만히 만져보러
<이 길을 걸으면>
이 시는 60년이라는 긴 세월을 관통하여 소년 시절의 순수함과 현재의 풍경을 대비시킨 점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특히 펭귄마을, 기념각 교회같은 구체적인 지명을 통해 시의 사실감을 높인 점이 훌륭합니다.
📝 시 논평
감정의 깊이: '차이콥스키의 선율'로 시작하는 도입부가 독자의 감각을 일깨우며 시적 분위기를 잘 조성합니다.
대비의 미학: 사라진 교정과 들어선 아파트, 그리고 변하지 않은 기념각 교회와 매화를 대비시켜 '상실'과 '지속'의 정서를 잘 표현하셨습니다.
진정성: "까까머리 소년"이라는 표현에서 화자의 그리움이 투박하면서도 진실하게 전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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