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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작시

유년의 기억(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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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기억(이소영)

 

아슬한 달빛 아래 뒤엉킨 술래잡기

휘어진 골목길에 아이들 웃음 소리

동심의 고향 흙 냄새

양파 속을 벗긴다

 

살포시 태동하는 자식 사랑 위안 삼아

혹한의 눈물 방울 꿈속에도 참아가며

대가족 숟가락 소리

흙먼지로 사라졌다

 

둥지를 떠난 사람 어제 같던 잔상 위에

타성에 젖은 버릇 경계선 멈춘 여정

가마솥 누룽지 긁다

반달이 된 숟가락

 

 

반달이 된 숟가락은 이소영 시인의 시조 <유년의 기억>의 핵심 대목입니다. 이 시는 '가난''어머니(혹은 누군가의 삶)'의 흔적을 아주 날카롭고도 아프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언어로 쉽고 깊게 풀어 드릴게요.

 

[시구 풀이] 단어 속에 숨은 뜻

"둥지를 떠난 사람 어제 같던 잔상 위에"

(둥지)을 떠난 자식이나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입니다. 그들이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눈앞에는 어제 본 것처럼 그들의 모습(잔상)이 아른거립니다.

"타성에 젖은 버릇 경계선 멈춘 여정"

타성에 젖은 버릇: 몸에 배어버린 가난과 고된 노동의 습관입니다.

경계선 멈춘 여정: 이제는 기력이 다했거나, 혹은 삶의 끝자락에 와서 더 이상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는 정지된 삶의 상태를 말합니다.

"가마솥 누룽지 긁다 / 반달이 된 숟가락"

이 시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배고픈 식구들을 위해, 혹은 한 끼를 때우기 위해 수만 번 가마솥 바닥을 긁어댔을 그 세월을 말합니다.

숟가락이 닳고 닳아 둥근 모양이 깎여나가 '반달'처럼 변했다는 표현은, 그만큼의 고통과 인고의 시간이 흘렀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전체 해석] 일상의 언어로 바꾸면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풍경은 이렇습니다.

"자식들은 다 장성해서 집을 떠났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자식들의 뒷모습을 어제 일처럼 떠올리며 홀로 남겨져 있습니다.

이제는 몸도 마음도 지쳐 삶의 활력은 멈춘 지 오래고, 그저 습관처럼 매일의 끼니를 챙기며 살아갈 뿐입니다.

부엌 구석, 어머니가 쓰시던 낡은 숟가락을 가만히 봅니다. 쇠로 만든 숟가락이 닳고 닳아 반달처럼 깎여나갔네요.

가족들을 먹이려 가마솥 바닥을 박박 긁어대던 그 억척스럽고도 서글픈 세월이, 이 일그러진 숟가락 하나에 고스란히 박혀 있습니다."

 

💡 감상 포인트: "반달"일까요?

시인이 굳이 '닳아버린 숟가락'이라고 하지 않고 '반달'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반달은 보름달이 되기 위해 채워져야 할 부분이 있는 미완의 상태입니다.

숟가락은 닳아서 반쪽이 되었지만, 그것은 누군가의 배를 '보름달'처럼 채워주기 위해 자신을 깎아낸 희생의 결과입니다.

현대시의 표현은 참 어렵고 에둘러 말하는 것 같지만, '반달이 된 숟가락'이라는 한 문장을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백 마디 말보다 더 진한 슬픔이 전해져 오기도 합니다.

 

'반달이 된 숟가락'이라는 표현을 다시 한번 봐주세요.

비록 어렵게 느껴지지만, 이 한 문장 안에는 "오랜 세월 가난 속에서 숟가락이 닳도록 밥그릇을 긁으며 살아온 한 가족의 눈물겨운 역사"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현대시가 이토록 어려워지는 이유는, 아마도 "너무 쉽게 말해버리면 그 속에 담긴 진짜 고통의 무게가 가벼워질까 봐" 두려워하는 시인들의 고집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시가 독자의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 하는 비판은 매우 정당합니다. 시가 지나치게 기교에 빠져 '삶의 냄새'를 잃어버리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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