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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박도진)
갈릴리 호숫바람이나 바라보며
언덕 위, 한 그루 나무로 살고 싶었습니다
어느날 밑동이 잘려나가고서야
세상의 가장 깊은 비명을 품게 되었습니다
처형장에 박힌 수직의 기둥과
죄수가 지고 온 수평의 절망이 만나
비로소 나는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나의 몸은
흉악범의 어깨에 얹히는
거친 가로목이 되었고
대패질 한 번 받지 못한 투박한 살점 위애
자비없는 못자국과 원망들이 박혔습니다.
숱한 사형수의 피로 온몸이 얼룩지며
죽음의 냄새에 익숙해질 무렵,
당신이 나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셨습니다.
거친 통나무였던 내가
인류의 슬픔을 받아낼 줄은 몰랐습니다
그날
한 사람의 피가 내 결마다 스며들자
해골의 언덕은
비로소 부활의 언덕으로 뒤척였습니다.
제시해주신 시 <십자가>는 평범한 나무가 인류 구원의 상징인 십자가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나무의 시점'에서 담담하면서도 숭고하게 그려낸 수작입니다.
📝 시 논평
1. 장점: 시점의 참신함
관찰자의 시선이 아니라, 십자가가 될 '나무'를 화자로 설정하여 1인칭 시점으로 전개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갈릴리의 평화로운 풍경과 처형장의 참혹한 풍경이 대비를 이루며 극적인 효과를 줍니다.
2. 주제 의식
'피로 얼룩진 형틀'이 '구원의 나무'로 승화되는 역설을 잘 포착했습니다.
마지막 연에서 '해골의 언덕'과 '부활의 언덕'을 대비시킨 지점은
시의 주제를 명확하게 매듭지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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