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자작시

고향초(홍민)

반응형

 

고향초(홍민)

 

남쪽나라 바다 멀리

물새가 날으면

뒷 동산에 동백 꽃이

곱게 피는데

뽕을 따는 아가씨들

서울로 가고

정든 고향 정든 사랑

잊었단 말인가

 

찔레꽃이 한잎 두잎

물 위에 날으면

내 고향에 봄은 가고

서리도 찬데

이 바닥에 정든 사람

어데로 갔나

전해오는 흙 냄새를

잊었단 말인가

 

'고향초'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편에 품고 있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장 잘 담아낸 노래 중 하나입니다.

 

1. '고향초'의 작가와 기본 정보

이 곡은 한국 가요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명콤비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작사: 김다인 (조명암의 필명)

작곡: 박시춘

대표 가수: 송민도(원곡), 장세정, 그리고 질문하신 홍민 등 많은 가수가 리메이크했습니다.

참고: 작사가 '김다인'은 해방 전후 활발하게 활동했던 '조명암' 선생의 필명입니다. 그는 뛰어난 감수성으로 시대의 아픔을 노랫말에 잘 녹여내기로 유명했습니다.

 

2. 노래에 얽힌 사연과 의미

이 노래는 1940년대 후반에 처음 세상에 나왔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해방의 기쁨도 잠시, 6.25 전쟁과 급격한 산업화를 겪으며 수많은 사람이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가사의 배경: 노랫말 속 '뽕을 따는 아가씨들 서울로 가고'라는 구절은 당시 농촌 공동체가 해체되고,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서울로 향해야 했던 젊은 세대의 애환을 상징합니다. 고향의 풍경(남쪽 나라, 동백꽃, 찔레꽃, 흙냄새)은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이 아니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소중하고 따뜻했던 유년의 기억을 의미합니다.

홍민의 노래: 특히 홍민 씨의 목소리는 특유의 차분하고 서정적인 저음 덕분에, 이 곡이 가진 '망향(고향을 그리워함)'의 정서를 더욱 극대화하여 70년대 이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3. 왜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는 노래가 되었을까요?

'고향초'가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히 멜로디가 좋아서만이 아닙니다.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 '향수': 우리 민족에게 고향은 단순히 태어난 곳을 넘어, 따뜻한 밥상과 흙냄새가 나는 안식처를 의미합니다.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향했던 많은 이들에게 이 노래는 자신의 인생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 같은 노래입니다.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짐: "잊었단 말인가"라는 후렴구는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두고 온 것들에 대한 회한을 담고 있습니다. 이 애절한 외침이 고향을 떠나온 모든 이의 마음을 대신 대변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박시춘표 멜로디: 박시춘 작곡가의 곡들은 한국인의 정서에 가장 잘 맞는 단조(Minor) 선율을 사용하여, 들을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명암(본명 조영출) 선생은 1930~40년대 한국 대중가요의 기틀을 닦은 독보적인 작사가이자 시인이었습니다. 앞서 소개해 드린 '고향초'를 비롯해, 그가 남긴 수많은 곡은 당시 사람들의 애환과 정서를 섬세하게 어루만졌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가사들은 지금도 한국 가요사의 고전으로 불립니다.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주요 작품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1. 시대를 울린 조명암의 대표곡들

알뜰한 당신 (1938)

가수: 황금심 / 작곡: 전수린

조명암의 필명인 '김다인'으로 작사한 곡입니다. "알뜰한 당신은 무슨 까닭에 / 바람에 지는 꽃잎이 되었나"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당시 식민지 시대의 불안한 삶 속에서 님을 잃은 슬픔을 절절하게 표현해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꿈꾸는 백마강 (1940)

가수: 이인권 / 작곡: 이봉룡

백제 옛 도읍지의 정취와 사라진 영광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했습니다. 역사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한 애틋한 서사가 돋보이는 곡입니다.

 

서귀포 칠십리 (1938)

가수: 남인수 / 작곡: 박시춘

제주도 서귀포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떠나간 님'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여 당시 많은 이들의 향수를 자극했습니다.

 

선창 (1941)

가수: 고운봉 / 작곡: 김해송

부둣가(선창)를 배경으로 헤어짐의 슬픔과 재회의 기약을 담았습니다. 뱃고동 소리와 함께 멀어지는 사람을 바라보는 심정을 너무나 감각적으로 묘사하여, 한국 트로트의 정석으로 꼽히는 곡입니다.

 

2. 조명암 가사의 특징: 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을까?

조명암 선생이 당대 최고의 작사가로 불렸던 이유는 그의 가사가 단순히 '노래 가사'에 머물지 않고 '한 편의 시()' 같았기 때문입니다.

섬세한 언어 선택: 그는 원래 등단한 시인이었기에, 비유와 은유가 매우 뛰어났습니다. 단순히 "슬프다"고 하지 않고, "바람에 지는 꽃잎", "먼 길 떠난 사람"과 같은 이미지로 사람들의 심상을 자극했습니다.

상실의 정서: 일제 강점기와 해방 전후라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고향을 떠나거나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의 '상실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가사에 녹여냈습니다. 그의 가사는 당대 사람들에게 일종의 위로이자, 고단한 삶을 견디게 하는 공감대였습니다.

음악적 조화: 박시춘, 전수린 등 당대의 최고 작곡가들과 호흡을 맞추며, 우리말의 운율을 멜로디에 가장 자연스럽게 얹히는 탁월한 감각을 보여주었습니다.

 

조명암 선생은 월북 이후 남한에서는 한동안 그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것이 금기시되기도 했지만, 그가 남긴 가사들은 시대를 넘어 한국인의 정서 속에 깊이 뿌리내려 지금까지도 불리고 있습니다.

 

 

반응형

'나의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맞이 꽃 (가수: 김정호)  (0) 2026.05.07
어느 대나무의 고백/ 복효근  (0) 2026.05.07
이미지를 모아서 만든 동영상(박도진)  (1) 2026.05.06
가재미​ / 문태준.  (0) 2026.05.06
긴머리 소녀(박도진)  (0) 2026.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