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재미 /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는 투병 중인 아내를 지켜보는 남편의 애틋하고도 절절한 마음을 담은 서정시입니다.
1. 시 <가재미> 해설
이 시는 김천의료원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에서 암 투병 중인 아내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보는 남편의 시선을 다룹니다.
►가재미의 상징성:제목이자 중심 소재인 '가재미'는 환자를 상징합니다. 가재미는 두 눈이 한쪽으로 쏠려 있어 한쪽 방향만 볼 수 있는 물고기입니다. 시인은 죽음의 문턱에 선 아내가 이제 삶을 뒤로하고 오직 '죽음'이라는 한쪽 방향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를 가재미에 빗대었습니다.
►교감과 위로: 화자인 '나'는 가재미(아내) 옆에 나란히 눕습니다. 이는 단순히 옆에 있는 것을 넘어, 고통받는 아내와 같은 처지가 되어 그녀의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는 깊은 공감과 연민을 뜻합니다.
►생의 소중함과 이별:화자는 아내의 병든 모습과 함께, 그녀가 살아왔던 소박하고 따뜻했던 일상(국수 삶던 저녁, 뻐꾸기 소리 등)을 회상합니다. 죽음을 앞둔 아내와 그녀의 생을 기억하는 남편의 대비를 통해, 죽음이라는 거대한 슬픔 속에서도 지켜주고 싶은 사랑의 마음을 형상화했습니다. 마지막 행에서 아내가 마른 몸 위에 눈물을 적셔주는 행위는, 두 사람 사이의 마지막 소통이자 서로를 향한 완전한 받아들임입니다.
2. 시에 사용된 주요 기법
비유와 상징(은유): '가재미'라는 생물을 활용하여 죽음 앞에 놓인 인간의 운명과 시점을 탁월하게 은유했습니다. 죽음으로 인해 시야가 좁아지고 삶의 바닥에 엎드릴 수밖에 없는 환자의 모습을 가재미의 생태적 특성으로 치환했습니다.
►대조적 이미지:환자가 바라보는 '죽음'과 화자가 떠올리는 '그녀의 파랑(물결) 같은 삶'을 대비시켜 슬픔의 깊이를 더했습니다. 또한 병원의 차가운 이미지(산소마스크, 캄캄함)와 그녀의 따뜻한 일상(뻐꾸기 소리, 국수)을 대조하여 비극성을 심화했습니다.
►감각적 이미지:'느릅나무껍질처럼 거칠어진 숨소리'와 같은 직유법을 사용하여 투병의 고통을 시각적, 촉각적으로 형상화했습니다.
►담담한 고백조의 어조:절규하거나 통곡하는 대신, '나는 안다'라는 표현을 반복하며 죽음을 수용하고 곁을 지키는 화자의 성숙하고 절제된 태도를 보여줍니다.
3. 문태준 시인의 약력과 시 세계
약력
출생:1970년 경상북도 김천 출생.
등단: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수상: 소월시문학상, 서정시학작품상, 미당문학상 등 다수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 현대 시단을 대표하는 서정 시인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문태준 시인의 시 세계
문태준 시인은 '서정의 계보를 잇는 시인'으로 불립니다. 그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생명에 대한 연민:그는 주로 낮은 곳에 있는 존재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혹은 잊혀져 가는 일상의 소소한 대상들에 따뜻한 시선을 보냅니다. 고통받는 존재를 배제하지 않고 그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포용합니다.
►불교적 세계관: 그의 시에는 불교적인 색채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비움', '무소유', '연기(緣起,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상)'의 가치가 시 곳곳에 녹아 있습니다. 죽음을 삶의 연장선 혹은 자연스러운 순리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드러납니다.
►일상의 재발견:거창한 담론보다는 우리 주변의 사물과 일상에서 생명의 경이로움과 따뜻함을 발견합니다. 담백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언어를 사용하여 독자들에게 위로와 성찰의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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