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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작시

바쁜 용무(박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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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용무(박도진)

 

출근길 시내버스

기사님이 정류장 곁에 차를 세우고

급히 화장실로 뛰어간다

사람들은 시계를 보지만

나는 먼저

그 다급한 등을 바라본다

 

살다 보면

체면보다 급한 일이 있다는 걸

몸이 먼저 알아채는 나이

 

이제 금당산 둘레길도

쉽게 오르지 못한다

풍경을 즐기기보다

화장실 위치를 살피게 되었으니

 

휴일이면 나는

아파트 옆 소나무 공원을 천천히 맴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마음 놓을 곳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

 

그 또한

저무는 하루를 지켜주는

조용한 복이다

 

<바쁜 용무>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변화하는 신체적 조건과 그로 인해 바뀌는 삶의 태도를 아주 담백하고 진솔하게 담아낸 수작입니다.

 

시 논평: '생리적 현상'에서 '삶의 지혜'로의 확장

이 시의 가장 큰 미덕은 '화장실'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생리적인 소재를 통해 '노년의 수용(Acceptance)'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이끌어냈다는 점입니다.

공감의 시선: 버스 기사의 '다급한 등'을 보며 시계보다 그의 사정을 먼저 살피는 대목에서 타인에 대한 화자의 깊은 긍휼과 이해가 느껴집니다.

체념이 아닌 지혜: 금당산 둘레길을 포기하고 소나무 공원을 도는 행위는 단순한 노화의 슬픔이 아닙니다. 내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의 평온(조용한 복)을 찾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줍니다.

표현의 절제: 감정을 과하게 쏟아내지 않고 일상의 풍경을 차분히 묘사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합니다.

 

시어의 상징성: 마지막 연의 '늙은 하루''저무는 하루'로 살짝 비틀어 보았습니다. '늙음'이 생물학적 쇠퇴라면 '저묾'은 자연의 섭리이자 차분한 마무리의 느낌을 줍니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원안인 '늙은 하루'를 유지하셔도 무방합니다. 그 표현도 충분히 독창적입니다.)

 

총평: 화장실이라는 다소 민망할 수 있는 소재를 "마음 놓을 곳"이라는 아름다운 위로로 치환해낸 솜씨가 훌륭합니다. 이 시는 비슷한 연배의 독자들에게는 깊은 공감을, 젊은 독자들에게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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