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뭄 (유주연)
<2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햇볕이 산등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새들은 마른 낙엽 밑으로 고개를 집어넣고 있었다
항아리는 토방처럼 말라가고 있었다
마른 목소리로 누군가를 부르는 사람의 가슴도 조각나고 있었다
대답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새는 그들의 마른 처소에서 울고
사람은 제단 아래에서 멍해지고 있었다
텁텁한 입과 질어진 머리 안팎으로
미처 울음이 되지 못한 슬픔들이 무음으로 울고 있었다
빛은 점점 옅어졌고 대지는 뜨거워졌으나
흙은 짙어지고 퍼즐처럼 갈라졌으나
몸들은 결코 따뜻해지지 않았다
영혼들은 스스로 자기를 먹으며 버텼다
때로 단지 마른 고기와 치즈가 그려진 금빛 액자틀 아래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듯 없는 목소리로 벙어리처럼 호소하고 있었다
햇볕이 산등 뒤로 또 다시 넘어가고 있었다
언제나 완전히 넘어가지 않고 넘어가고만 있었다
가뭄이었다
가뭄이었고
가뭄이었다
새들의 눈물이 낙엽을 적시고 있었다
사람의 모은 손이 신앙을 넘어가고 있었다
결정적 형태가 주어지지 않았다
가뭄이 깊어지고 피가 굳어가고 식량이 가루가 되어가고 있었다
△유주연(본명 유주영). 1988년 전주 출생.
2023년 청색지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시 심사평]
2026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응모에는 많은 분들의 참여가 있었다.
가히 문학에 대한 열화(熱火)와 같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적 경향은 서정시가 우세했다.
낙엽자연과 계절감, 생활의 서사, 가족과 공유한 경험 등 전통적인 소재가 많았다.
우리가 한 편의 시에 대해 거는 기대는 묵은 것을 새롭게 하는 힘을 발견하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심사위원들은 네 분의 작품을 특별히 주목했다.
숙의에 숙의를 거듭해 ‘가뭄’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우선 동봉한 작품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고르고 오랜 창작의 이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언어를 절제해 여운이 퍼져가도록 공간을 만들면서도 묘사는 묘사대로 정교하고 치밀했다.
‘가뭄’은 이상 기후가 지속되는 동안 발생하는 현상을 나열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메마른 날씨가 자연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종교심까지 균열시키는 그 여파에
시의 시선을 모아가면서 이 세계가 다름 아닌 하나의 ‘항아리’와도 같은 곳임을 성찰하게 했다.
사람의 목소리가 무음(無音)이 되고,
“식량이 가루가 되어가”는 사태의 제시는
이 시가 의도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적절하고 효과적이었다
무엇보다 시적 상상력이 인문학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앞으로 이 분이 선보일 시적 역량을 두텁게 신뢰하게 했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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