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효근, 「 새에 대한 반성문 」
춥고 쓸쓸함이 몽당빗자루 같은 날
운암댐 소롯길에 서서
날개소리 가득히 내리는 청둥오리떼 본다
혼자 보기는 아슴찬히 미안하여
그리운 그리운 이 그리며 본다
우리가 춥다고 버리고 싶은 세상에
내가 침 뱉고 오줌 내갈긴
그것도 살얼음 깔려드는 수면 위에
머언 먼 순은의 눈나라에서나 배웠음직한 몸짓이랑
카랑카랑 별빛 속에서 익혔음직한 목소리들을 풀어놓는
별, 별, 새, 새, 들, 을, 본다
물속에 살며 물에 젖지 않는 얼음과
더불어 살며 얼지 않는 저 어린 날개들이
건너왔을 바다와 눈보라를 생각하며
비상을 위해 뼈 속까지 비워둔 고행과
한 점 기름기마저 깃털로 바꾼 새들의 가난을 생각하는데
물가의 진창에도 푹푹 빠지는
아, 나는 얼마나 무거운 것이냐
내 관절통은 또 얼마나 호사스러운 것이냐
그리운 이여,
네 가슴에 못 박혀 삭고 싶은 속된 내 그러움은
또 얼마나 얕은 것이냐
한 무리의 새떼는 또
초승달에 결승문자 몇 개 그리며 가뭇없는
더 먼 길 떠난다 이 밤사
나는 옷을 더 벗어야겠구나
저 운암의 겨울새들의 행로를 보아버린 죄로
이 밤으로 돌아가 더 추워야겠다 나는
한껏 가난해져야겠다
복효근 시인의 「새에 대한 반성문」은 차가운 겨울 운암댐을 배경으로,
자연(새)의 순수함과 치열함을 통해
인간의 속물성과 나태함을 날카롭게 성찰한 수작입니다.
이 시가 왜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는지, 주요 대목을 중심으로 논평해 드립니다.
1. 대비를 통한 성찰: '가벼운 새'와 '무거운 나'
이 시의 핵심 동력은 새와 화자 사이의 극명한 대비에 있습니다.
새의 가벼움(숭고함): 새들은 비상을 위해 "뼈 속까지 비워둔 고행"을 감내하고
"기름기마저 깃털로 바꾼 가난"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생존과 자유를 위한 극단의 절제미를 보여줍니다.
나의 무거움(속됨): 반면 화자는 진창에 발이 푹푹 빠지는 존재입니다.
그가 앓는 "관절통"은 새들의 사투에 비하면 "호사스러운 것"이며,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조차 "상대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이기적이고 얕은 욕망으로 치부됩니다.
2. 역설적 이미지: '물에 젖지 않는 물새'
시인은 새들의 생태적 특징을 관념적인 가치로 승화시킵니다.
"물속에 살며 물에 젖지 않는 얼음과 / 더불어 살며 얼지 않는 저 어린 날개들"
세상(물/얼음) 속에 살면서도 그 세속에 물들거나 굴복하지 않는 새들의 모습은,
우리가 "춥다고 버리고 싶은 세상"에 침을 뱉으며 냉소할 때,
그들은 오히려 그곳을 아름다운 목소리로 채우고 있음을 부끄럽게 역설합니다.
3. '반성'에서 '결단'으로의 전개
시의 후반부는 단순히 "미안하다"는 감상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실천적 의지로 나아갑니다.
죄의식: 새들의 고결한 비상을 "보아버린 죄"라고 표현합니다.
진실을 목격한 자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자각입니다.
자발적 고난: "옷을 더 벗어야겠구나", "더 추워야겠다", "한껏 가난해져야겠다"는 선언은 새들이 가졌던 그 비움의 자세를 닮아가겠다는 의지입니다. 이는 정신적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본질적인 삶을 회복하려는 구도자적 자세를 보여줍니다.
💡 총평
이 시는 '가난'과 '추위'라는 부정적 시어를 '순수'와 '자유'를 위한 필수 조건으로 치환해 놓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더 많이 소유하고 따뜻한 곳을 찾아 숨으려 하지만, 시인은 오히려 "더 추워야겠다"며 자신을 채찍질합니다. 편리함과 안락함에 매몰되어 삶의 무게가 무거워진 현대인들에게, "당신은 비상을 위해 무엇을 비웠는가?"라고 묻는 뼈아픈 질문지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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