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 이후(정호승)
부활 이후에도 부활이 필요하다
부활 이후에도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고
시든 꽃들은 다시 시들고
참회나무는 참회의 기도를 중단하고
마른 강물은 다시 마르고
죽은 별들은 다시 죽기 시작하고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도 전에
진리를 잃고 쓰러졌으므로
부활 이후에도 당신은
십자가에 다시 못 박혀야 한다
당신을 넘어 당신에게로 가기 위해서는
부활 이후에도 부활의 새벽이
찾아와야 한다
▶정호승 시인의 <부활 이후>는 종교적 상징인 '부활'을 일상적이고 실존적인 고통의 영역으로 끌어내린 아주 서늘하면서도 뜨거운 시입니다.
1. 시 논평: '완성'이 아닌 '반복'으로서의 구원
일반적으로 '부활'은 고통의 끝이자 최종적인 승리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부활 이후에도 부활이 필요하다"며 그 관념을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역설적 절망: 부활했는데도 여전히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고, 시든 꽃은 다시 시듭니다. 이는 기적이 일어난 후에도 변하지 않는 비정한 현실을 폭로합니다.
끊임없는 희생의 요구: "당신은 십자가에 다시 못 박혀야 한다"는 구절은 충격적입니다. 진정한 사랑이나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한 번의 이벤트(부활)가 아니라, 매일매일 죽고 다시 살아나는 고통스러운 반복이 필요하다는 실존적 깨달음을 보여줍니다.
신성(神聖)의 인간화: 종교적 완결성에 안주하지 않고, 여전히 마르고 시들어가는 '지금, 여기'의 삶을 붙잡으려는 시인의 치열한 의지가 돋보입니다.
2. 이 시의 시작법 (Writing Technique)
이 시를 관통하는 창작 기법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① 역설적 전제와 반복 (Paradox & Repetition)
이 시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문장의 반복입니다.
"~ 이후에도 ~가 필요하다/하고"라는 구조를 반복하며 운율을 만듭니다.
특히 '부활(희망)' 이후에 '시들고, 마르고, 죽는(절망)' 이미지를 배치함으로써 독자가 예상하는 희망찬 결말을 배신하고 더 깊은 통찰을 끌어냅니다.
② 추상적 관념의 시각화 (Concretization)
'사랑'이나 '진리', '구원'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을 그대로 두지 않고 구체적인 사물과 연결했습니다.
참회나무, 마른 강물, 죽은 별: 인간의 내면적 황폐함을 자연물의 상태로 전이시켜 독자가 그 막막함을 시각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③ 목적론적 도치 (Teleological Inversion)
"당신을 넘어 당신에게로 가기 위해서": 이 구절은 이 시의 핵심적인 작법입니다. A를 얻기 위해 A를 부정하거나 넘어서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기존의 고정관념(이미 알고 있는 당신)을 깨부수어야만 진정한 본질(진짜 당신)에 도달할 수 있다는 '부정의 변증법'을 시적 문장으로 구현했습니다.
💡 시 쓰기 연습을 위한 제언
만약 이런 스타일의 시를 써보고 싶으시다면, 당연히 끝났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세요.
예: "졸업 이후에도 졸업이 필요하다", "이별 이후에도 이별이 필요하다"
이처럼 마침표가 찍힌 곳에 다시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 정호승 시인이 이 시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시작법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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