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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작시

전라도 가시내 (이용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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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가시내 (이용악)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히 잠거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드러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두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듯 울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방언으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게

손때 수집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이용악 시인의 전라도 가시내(1938)는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삶과 유랑의 아픔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한국 현대시의 걸작 중 하나입니다.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알아두면 좋은 주요 포인트들을 정리해 드릴게요.

1. 작품의 핵심 배경: 유랑과 연대

이 시의 배경은 우리 땅이 아닌 먼 이국땅인 '북간도(만주)'의 어느 술막(술집)입니다.

함경도 사내: 시적 화자입니다. 고향을 떠나 먼 북쪽까지 흘러온 유랑민입니다.

전라도 가시내: 타향에서 술을 파는 처지인 여인입니다. 한반도의 남쪽 끝(전라도)에서 북쪽 끝(북간도)까지 흘러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민족의 비극: 남과 북의 끝에서 온 두 사람이 낯선 타국 땅에서 만났다는 설정 자체가, 당시 일제의 수탈로 인해 전국 팔도로 흩어져야 했던 우리 민족의 비참한 유랑 생활을 상징합니다.

 

2. 시의 구조와 주요 내용

전반부: 고달픈 유랑의 현실

화자인 '함경도 사내'는 매서운 추위와 눈보라를 뚫고 북간도까지 왔습니다. 그는 술막에서 만난 '전라도 가시내'를 보며 동질감을 느낍니다.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은" 불안한 시대 분위기와 술막의 쓸쓸한 풍경이 묘사됩니다.

 

중반부: 가시내의 아픔과 위로

전라도 가시내가 고향을 떠나 이곳까지 오게 된 험난한 여정을 짐작하며 연민을 보냅니다.

"두어 마디 너의 방언으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게"

화자는 그녀에게 고향 말투(전라도 방언)를 써보라고 권합니다. 낯선 타향에서 고향의 언어를 나누는 행위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잠시나마 고향의 따스함()을 느끼게 하려는 민족적 유대감을 보여줍니다.

 

후반부: 다시 떠나는 유랑길

잠시의 위로가 끝나고, 화자는 다시 거친 눈보라가 치는 벌판으로 나설 준비를 합니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이는 정착할 곳 없는 유랑민의 고단한 운명과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비극적인 현실을 암시하며 쓸쓸하게 마무리됩니다.

 

3. 주요 시어 및 표현의 특징

이 시는 단순히 슬픔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비록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타지에서 만난 동포끼리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언어(방언)를 통해 정서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모습이 감동을 줍니다. 이용악 시인 특유의 사실적인 묘사와 서사적 구조(이야기 형식)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1930년대, 고향을 잃고 만주 벌판을 헤매야 했던 우리 조상들의 고단한 발걸음을 상상해 보시면 더욱 깊은 울림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이용악 시인의 전라도 가시내는 당시의 생생한 현장감과 민족적 정서를 담기 위해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옛말이나 평안도, 함경도 방언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질문하신 단어들의 뜻을 풀이해 드릴게요.

시어 풀이

호개: '호적(胡笛)'의 방언으로, 태평소를 말합니다. 시에서는 바람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날카롭고 구슬픈 악기 소리를 비유하며 북간도의 황량하고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얼구며: '얼게 하며'의 줄임말입니다. 여기서는 '얼리다'라는 뜻으로, 함경도 사내가 매서운 추위 속에서 발이 얼 정도로 험난한 길을 걸어왔음을 의미합니다.

 

눈포래: '눈보라'의 방언(함경도)입니다. 단순히 눈이 오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휘몰아치는 거센 눈발을 뜻하며, 유랑민이 처한 가혹한 시련을 상징합니다.

 

초마폭: '치맛자락'이나 '치마폭'을 의미합니다. 전라도 가시내가 슬픔을 참지 못하고 얼굴을 치마에 파묻고 우는 가슴 아픈 장면을 묘사합니다.

불술기: '기차(증기기관차)'를 뜻하는 평안도 방언입니다. '불을 뿜으며 달리는 수레'라는 뜻이죠. 기차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통해 유랑의 속도감과 불안감을 표현합니다.

 

우줄우줄: '우쭐우쭐'의 옛 표현으로, 몸을 크고 힘차게 움직이며 걷는 모양을 나타냅니다. 시의 마지막에서 화자가 다시 시련의 벌판으로 당당하게, 혹은 운명에 순응하며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용악(1914~1971) 시인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유랑''결핍'*을 가장 사실적이면서도 서사적으로 그려낸 시인입니다. 흔히 백석과 함께 북방 정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히며, 근대 시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 꼭 알아야 할 핵심 포인트들을 정리해 드릴게요.

 

1. 북방의 시인, 유랑의 기록자

이용악은 함경북도 명천 출신으로, 그의 시에는 북방의 거친 자연환경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녹아 있습니다.

가족사의 비극: 어린 시절 아버지가 러시아에서 행상을 하다 객사하신 경험이 있는데, 이는 그의 대표작 분녀오랑캐꽃등에서 가족의 해체와 유랑의 아픔으로 형상화됩니다.

민족의 수난사: 개인의 아픔을 넘어, 일제의 수탈로 고향을 등지고 만주나 러시아로 떠나야 했던 우리 민족 전체의 비극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습니다.

 

2. 주요 시적 특징

이용악의 시는 화려한 수사보다는 현실적인 묘사와 이야기(서사)가 중심을 이룹니다.

서사적 구조: 한 편의 시가 마치 짧은 소설이나 이야기처럼 흘러가는 형태가 많습니다.

전라도 가시내역시 함경도 사내와 전라도 여자의 만남이라는 서사적 설정을 가지고 있죠.

사실주의(리얼리즘): 추상적인 슬픔이 아니라, 배고픔, 추위, 가난 등 구체적인 삶의 고통을 가감 없이 드러냈습니다.

공동체 의식: 억눌린 자들, 소외된 자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그들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민족적 유대감을 강조했습니다.

 

3. 해방 이후와 월북

해방 이후 이용악은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6.25 전쟁 중 월북했습니다. 이로 인해 남한에서는 오랫동안 그의 작품이 금기시되기도 했으나, 1988년 해금 조치 이후 그의 탁월한 문학적 가치가 재조명받으며 오늘날에는 교과서에도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시인이 되었습니다.

 

한 줄 요약:

이용악은 "가장 춥고 배고픈 시대의 목소리를 가장 따뜻하고 사실적인 언어로 담아낸 시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금 읽으신 전라도 가시내도 이런 그의 삶과 문학적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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