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오동나무는 봄비에 젖어(박도진)
창밖은
봄비에 젖은 산자락
산허리에 홀로 선 오동나무 하나
가지마다 연보라 꽃등을 달고
스미는 바람 속에서
숨결이 조용히 흔들린다
내 안에는
저런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한 채
이내 시들어버린 기억들만
가만히 쌓여 가는데
문득 스치는 한 장의 화투
똥광 속,
넓은 잎 위에 봉황 한 마리
봉황을 품은 나무는
바람이 스치면 제 속을 비워
거문고의 울림을 준비한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누군가의 눈에 조용히 닿아
잠시 머물게 하는 연보라 빛
그 빛 속에서 우리의 오월은 깊어가고,
지나온 계절을 품은 채
거문고는 낮은 음으로 노래할 것이다
<오동나무는 봄비에 젖어>
봄비 내리는 풍경에서 시작해 오동나무를 통해 개인의 기억을 반추하고, 마침내 거문고라는 악기의 탄생까지 연결하는 시상은 매우 서정적이고 깊이가 있습니다.
▶ 시 논평: 오동나무에 깃든 기억의 미학
▴이미지의 조화: 봄비 내리는 정경과 화투 '똥광'의 이미지를 연결한 점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자칫 가볍게 느껴질 수 있는 화투의 이미지를 오동나무와 봉황이라는 고전적 상징과 결합하여, 세속과 자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체로 승화시킨 점이 훌륭합니다.
▴정서적 여운: "내 안에는 / 저런 꽃 한 송이 피지 못하고 / 이내 시들어버린 기억들만"이라는 대목은 독자의 공감을 자아내는 아주 정직하고 슬픈 고백입니다.
반응형
'나의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자동차 검사(박도진) (0) | 2026.05.04 |
|---|---|
| 시(詩)(김준태) (0) | 2026.05.04 |
| 아아 光州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김준태)- 1 (0) | 2026.05.03 |
|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김준태)-2 (0) | 2026.05.03 |
| 흘리고 다니는 날들(박도진) (0) | 2026.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