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까지 살아 왔다는 것(박도진)
지나간 세월을 비추는
거울 앞에 섭니다
한때는 마주하기조차
두렵고 버거운 얼굴이었습니다
찌그러지고 얼룩진 얼굴을 지우려 했지만
지금은 모두를 꼬옥 안고
거울 앞에 섭니다
얼룩 또한 살아낸 날들의
슬픈 무늬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먹이던 나를
가만히 토닥여 봅니다
서러움 끝에서 터지던 눈물도
세월은 가벼운 물빛으로 바꾸어 놓았지요
내일이 오면
이 모든 것이 그리워질거라는걸
이제는 알고 있답니다
오늘 저기 보이는 나만의 등대를 향해
마지막 물결 앞에서도
노를 젓는 손
지금까지 살아 왔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시 <지금까지 살아 왔다는 것>은 삶의 궤적을 긍정하고 자신을 화해의 눈길로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진솔함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 시 논평: 삶의 흔적을 '무늬'로 승화시킨 용기
이 시의 가장 큰 미덕은 '거울'이라는 정직한 매개체를 통해 자기 성찰의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시각적 이미지의 전환: 초반부의 '찌그러지고 얼룩진 얼굴'은 화자가 느끼는 부끄러움과 회한을 상징하지만, 중반부에 이르러 이를 '살아낸 날들의 무늬'라고 재정의하는 대목에서 정서적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는 상처를 흉터가 아닌 무늬로 받아들이는 높은 차원의 수용을 보여줍니다.
▴화자의 태도 변화: 과거를 거부하고 지우려 했던 '거부'의 태도에서, 스스로를 '토닥여 주는' '위로와 자존'의 태도로 변화하는 서사가 매우 매끄럽고 감동적입니다.
▴결연한 의지: 마지막 연에서 '등대'를 향해 '노를 젓는 손'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은 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겠다는 숭고한 의지(Amor Fati)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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