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탑 마을로 귀향 (박도진)
월출산 가는 길
나주 세지 지나면
논바람 끝에 오층 석탑 하나 서 있다
세월에도 허리 굽지 않는 돌부처 같은 마을
그 석탑 아래서 자란 사람
도시의 소음과 미련을 내려놓고
빈 고향집으로 홀로 돌아왔다
적적해서 토끼 두 마리를 들였더니
녀석들, 마당 풀을 싹 비운다
며칠 뒤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수상한 고양이 한 마리 슬그머니 찾아와
눈치부터 본다
그러더니
새끼 넷까지 줄줄이 데려오고
처마 밑엔 제비 부부까지 입주해
종일 재잘재잘
둥지 속 새끼들은
뻐끔뻐끔 염불 중이다
혼자 내려온 귀향길이었는데
어느새 집 안팎이 북적인다
토끼는 풀 뜯는 소리로 독경하고
고양이는 마을 길을 돌며 시주를 받고
제비들은 허공에 축문을 쓴다
오층 석탑을 오래 품은 마을이라 그런가
사람 하나 돌아왔을 뿐인데
굶던 생명들이 먼저 알아보고 몰려왔다
이제 이 집은
사람이 짐승을 거두는 곳이 아니라
외로운 자들의 고향집이 되었다
▶<화탑마을로 귀향>은 도시 생활의 소란함을 뒤로하고 돌아온 고향에서 발견한 ‘생명 공동체’의 따뜻함을 정겹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 시에 대한 논평을 세 가지 핵심 관점으로 정리해 드립니다.
1. 비움으로 시작해 충만으로 끝나는 서사
▴시의 도입부에서 화자는 '소음과 미련'을 내려놓고 '홀로' 빈 고향집에 돌아옵니다. 물리적으로는 비어 있는 공간이지만, 화자가 자리를 잡자마자 토끼, 고양이, 제비 등 소외되었던 생명들이 하나둘 모여듭니다.
▴반전의 묘미: 혼자 왔으나 결코 혼자가 아니게 되는 과정이 유머러스하면서도 감동적입니다. 특히 고양이가 새끼를 줄줄이 데려오고 제비가 입주하는 모습은 고향집이 단순한 거처를 넘어 '생명의 안식처'로 확장됨을 보여줍니다.
2. 불교적 상상력과 성스러운 일상
시 전반에 흐르는 '오층 석탑'과 '돌부처'의 이미지는 마을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사찰처럼 느끼게 합니다. 작가는 동물의 습성을 종교적 행위로 승화시켰습니다.
토끼의 풀 뜯기: 독경(讀經)
고양이의 외출: 시주(施主)
제비의 비행: 축문(祝文) 쓰기
새끼 새들의 입질: 염불(念佛)
이러한 비유는 미물들의 움직임조차 숭고한 생명의 의식으로 격상시키며, 화탑마을을 세속의 찌꺼기를 씻어내는 수행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킵니다.
3. '거둠'이 아닌 '동행'의 철학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결구입니다. 화자는 자신이 짐승들을 '거두었다'고 교만하게 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모여듦으로써 자신의 외로움이 치유되었음을 인정합니다.
"이제 이 집은 / 사람이 짐승을 거두는 곳이 아니라 / 외로운 자들의 고향집이 되었다"
결국 이 시는 '귀향'이란 단순히 옛집으로 돌아가는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외로운 존재들과 온기를 나누며 잃어버린 영혼의 원형을 회복하는 과정임을 나지막이 읊조리고 있습니다.
▶총평
"투박한 돌부처의 미소처럼 따뜻한 시"
월출산 자락의 서정적인 풍경 위에 불교적 관조를 덧입혀, 현대인들이 잊고 살았던 '공존의 미덕'을 일깨워줍니다.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에 오층 석탑 하나가 든든하게 들어서는 듯한 안도감을 주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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