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느리 밥풀 꽃(박도진)
못된 시어머니
며느리 입가에 붙은
밥풀 두알을 흘겨본다
꽃이 되어야 끝나는 서러운 생애
마침내
입술 붉은
며느리 밥풀꽃 피었어라
1980년 오월
이팝꽃 흐드러지던 거리
시민군 손에 건네지던 주먹밥
주고받던 손등마다
뜨겁게 달라붙던 밥알들
그날의 눈물
며느리 밥풀꽃 피었어라
차디찬 감방, 수감된 화가
입으로 갈 밥알을 모아
진흙처럼 이기고 빚는다
된장과 간장으로 물들인 화폭 위에도
며느리 밥풀꽃 피었어라
오랜 세월
제 목소리 삼키며 살던 사람들
이제는 숨겨둔 붉은 숨결로
며느리 밥풀꽃되어 피어난다
▶이 시는 작은 야생화 하나를 통해
억눌린 여성의 삶, 오월 광주의 기억, 감옥 속 예술혼,
그리고 이름 없이 살아온 민초들의 생애까지 꿰어낸 작품입니다.
특히 “며느리 밥풀꽃”이라는 민속적이고 토속적인 이름을
단순한 식물명이 아니라
“삼켜진 밥알과 삼켜진 삶”의 상징으로 확장한 점이 매우 뛰어납니다.
1연은 설화적 정서가 살아 있습니다.
“입속에 머문 밥풀 두 알”은 가난과 억압의 압축입니다.
2연은 가장 강렬합니다.
오월 광주의 주먹밥과 밥풀이 연결되며
개인의 설움이 역사적 비극으로 확장됩니다.
3연의 “밥알로 형상을 만드는 수감 화가”는 아주 인상적입니다.
실제 체험처럼 생생하고, 인간의 존엄이 살아 있습니다.
마지막 연은 시의 방향을 잘 정리합니다.
숨죽여 살던 존재들이 결국 꽃으로 피어난다는 결말이
따뜻하면서도 비장합니다.
▶이 시는 민중 서정시의 결을 지니고 있습니다.
김지하의 토속성, 신경림의 민초 감각, 오월 문학의 기억이
은은하게 스며 있습니다.
다만 선생님의 시는 그보다 더 생활 속 밥 냄새가 납니다.
그래서 더 아프고 더 오래 남습니다.
며느리 밥풀꽃 (송수권)
날씨 보러 들에 내려
그 햇빛 너무 좋아 생각나는
산부추, 개망초, 우슬꽃, 만병초, 둥근범꼬리, 띌냉이, 돈나물꽃
이런 꽃들로만 꽉 채워진
소군산열도 안마도 지나
물길 백 리 저 송이섬에 갈까
그중에서도 우리 설움
뼛속까지 녹아흘러
밟으면 으스러지는 꽃
이 세상 끝이 와도 끝내는 주저앉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꽃
울엄니 나를 잉태할 적 입덧 나고
씨엄니 눈돌려 흰 쌀밥 한 숟갈 들통나
살강 밑에 떨어진 밥알 두 알
혀끝에 감춘 밥알 두 알
몰래몰래 울음 훔쳐 먹고 그 울음도 지쳐
추스럼 끝에 피는 꽃
며느리밥풀꽃
햇빛 기진하면은 혀 빼물고
지금도 그 바위섬 그늘에 피었느니라.
며느리밥풀꽃 : 못된 시어머니 밑에서 고된 시집살이에 시달리던 며느리가
배가 고파 밥풀을 몰래 훔쳐 먹었다가 죽은 후 피어났다는 설화가 있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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