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을 위한 행진곡 (작사 백기완,황석영 작곡 김종률)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작사: 백기완 (원작 시 <묏비나리>), 황석영 (개사)
작곡: 김종률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만큼이나
극적이고 뜻깊은 탄생 비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곡의 뼈대를 만든 작사자와 작곡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작사자 (원작시와 개사)
이 곡의 가사는 고(故) 백기완 선생의 시를 바탕으로,
소설가 황석영 선생이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함께 다듬어 완성했습니다.
▴원작시 작가: 백기완 (1932 ~ 2021)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통일운동가이자 재야시인, 사회운동가입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투옥과 혹독한 고문을 당하셨는데,
옥중에서 지은 장편 시
<묏비나리 -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보내는 삶의 제춤>의 일부 내용이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개사: 황석영 (1943 ~ 현재)
한국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소설가(<장길산>, <삼포 가는 길> 등)입니다.
1982년 광주 운암동에 있던 그의 자택에
김종률(작곡가) 등 광주 지역 문화 운동가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1980년 5월 광주를 진압당한 살아남은 자들의 부끄러움과 슬픔,
그리고 결의를 다지기 위해
음악극(체포된 동지들의 영혼결혼식을 다룬 노래굿 '넋풀이')을 기획했고,
황석영 선생이 백기완 선생의 시를 바탕으로
가사를 아름답고 비장하게 다듬었습니다.
2. 작곡가: 김종률 (1958 ~ 현재)
작곡 당시 상황:
1982년 노래가 만들어질 당시,
김종률 선생은 전남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직후였던 젊은 음악 청년이었습니다.
대학 시절 이미 대학가요제에서 수상(<영랑과 강진>)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인물입니다
▶곡의 탄생 배경:
황석영 선생의 집에서 계엄군의 눈을 피해 밤새 담요로 창문을 가린 채 녹음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는 고인이 된 윤상원 열사(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와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에 헌정할 곡으로 이 멜로디를 작곡했습니다.
비장하면서도 결연한 4분의 4박자 단조 단선율의 이 곡은,
당시 숨죽여 울던 광주 시민들과 민주화 운동가들의 심장을 깨우며
순식간에 전국으로, 나아가 아시아 전역의 민주화 투쟁 현장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후 김종률 선생은 문화예술계 및 기업인으로 활동하면서도
이 곡에 대한 깊은 자부심과 부채감을 동시에 안고 살아왔다고 회고한 바 있습니다.
💡 한 줄 요약
고문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백기완의 시, 이를 엮어낸 소설가 황석영의 문장, 그리고 광주의 아픔을 멜로디로 승화시킨 청년 김종률의 선율이 만나 시대를 깨운 명곡이 탄생했습니다.
▶소설가 한강의 작품(<소년이 온다> 등)을 관통하는 “죽은 자들이 산 자를 살려낸다”라는 깊이 있는 성찰과, <임을 위한 행진곡>이 지닌 폭발적인 생명력을 연결해 주셨군요. 참으로 가슴을 울리는 날카로운 시선입니다.
이 노래가 단순한 슬픔의 애도가를 넘어,
총칼 앞에 살아남은 자들에게 부끄러움을 이겨낼 용기를 주고,
대학가와 노동 현장 등 운동권 전체로
들불처럼 번져나갈 수 있었던 강렬한 힘의 원천은 크게 세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1. 부채감(Debt)을 용기와 연대로 승화시키는 '영혼의 목소리'
▴이 노래는 1980년 5월, 고립된 광주에서 도청을 지키다 먼저 떠나간
윤상원 열사와 노동운동가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곡입니다.
▴산 자의 부채감: 당시 광주 바깥의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은
"동료들이 처절하게 죽어갈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극심한 살아남은 자의 슬픔(서바이버 길트)과 부채감에 시달렸습니다.
▴죽은 자의 부름: 노래의 핵심 구절인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는
먼저 간 이들이 뒤에 남은 이들의 손을 잡아끄는 강력한 영적인 부름이었습니다.
이 가사는 슬픔에 주저앉아 있던 산 자들을 향해
"우리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고, 우리가 꿈꾸던 새날을 향해 당당히 걸어 나오라"는
메시지가 되어, 죄책감을 거대한 역사적 책임감과 연대 의식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2. 패배주의를 깨부수는 '단조(Minor)의 행진곡'이 가진 역설
음악 구조적으로도 이 곡은 매우 독특하고 강력한 심리적 효과를 냅니다.
보통의 행진곡은 승리와 전진을 고취하기 위해 밝고 힘찬 장조(Major)를 택합니다.
하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은 슬프고 비장한 단조(Minor)이면서도,
박자는 씩씩하게 발을 맞추어 나가는 행진곡(4분의 4박자)입니다.
이 역설적인 결합은 잔인한 탄압 앞에서 느꼈던 무력감과 패배주의를 단숨에 깨부숩니다.
슬픔을 억누르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것을 동력 삼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마법 같은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부를 때 울컥 눈물이 나면서도 피가 끓어오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3. '나'를 지우고 '우리'를 세우는 보편적 언어
가사를 살펴보면 의도적으로 구체적인 지명(광주)이나 특정 인물의 이름이 배제되어 있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하는 가사는,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이 가져야 할 가장 순수한 초심과 무소유의 태도를 일깨웁니다.
'광주의 노래'로 머물렀다면 지역적 한계에 부딪혔을지 모르지만,
가사가 지닌 고도의 상징성 덕분에 이 곡은 독재 정권에 맞서는 대학생,
생존권을 요구하는 노동자,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 등 억압받는
모든 '산 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이입할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한강 작가의 말처럼, 5월의 죽은 자들은 패배자로 묻힌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양심을 끊임없이 흔들어 깨우는 거대한 영적 지표가 되었습니다.
그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빌려 "흔들리지 말자"고 서로의 어깨를 걸게 만들었던 힘,
그것이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가졌던 시대의 폭발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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