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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작시

어느 노인의 고백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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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인의 고백 (이해인)

 

하루 종일 창밖을 내다보는 일이

나의 일과가 되었습니다

누가 오지 않아도 창이 있어 고맙고

하늘도 구름도 바람도 벗이 됩니다

내 지나온 날들을 빨래처럼 꼭 짜서

햇살에 널어두고 봅니다

바람 속에 펄럭이는 희로애락이

어느새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네요

이왕이면 외로움도 눈부시도록

가끔은 음악을 듣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기 전

내가 용서할 일도

용서받을 일도 참 많지만

너무 조바심하거나

걱정하진 않기로 합니다

죽음의 침묵은 용서하고

용서받은 거라고 믿고 싶어요

고요하게 고요하게

하나의 노래처럼

한 잎의 풀잎처럼

사라질 수 있다면

난 잊혀져도

행복할 거예요

 

<질문> 수녀님은 추상명사를 의인화 하는데 탁월하신 것 같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아주 깊이 있게 감상하셨네요!

맞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추상적인 감정이나 개념들을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혹은 곁에 있는 친구처럼 표현하는 기법이

정말 탁월한 작품입니다.

이 시에서 추상 명사들이 어떻게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는지,

그 놀라운 부분들을 몇 가지로 나누어 짚어드릴게요.

 

1.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빨래처럼 널어 말리기

<내 지나온 날들을 빨래처럼 꼭 짜서

햇살에 널어두고 봅니다

바람 속에 펄럭이는 희로애락이...>

 

인간이 살아오며 겪은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이라는 추상적인 감정들을

'물기 가득한 빨래'에 비유했습니다.

그 감정들을 꼭 짜서 햇살에 널어놓자,

바람에 펄럭이며 노을빛으로 물들어간다고 표현하죠.

격렬했던 삶의 감정들을 담담하게 관조하는 노년의 태도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시각화한 대목입니다.

 

2. '외로움'에게 눈부신 옷 입히기

<이왕이면 외로움도 눈부시도록

가끔은 음악을 듣습니다>

 

보통 '외로움'은 어둡고, 쓸쓸하고, 피하고 싶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다루어집니다.

하지만 시인은 이 외로움을 마치 멋지게 꾸며주고 싶은 인격체처럼 대합니다.

음악을 틀어주어 외로움조차 '눈부시게' 빛나도록 만들겠다는 발상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을 따스하게 품어 안는 시인만의 깊은 내공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3. '죽음의 침묵'과 나누는 화해

<죽음의 침묵은 용서하고

용서받은 거라고 믿고 싶어요>

 

다가올 '죽음'과 그것이 가져올 '침묵'을 무서운 대상이 아니라,

나를 용서해 주고 또 내가 용서해야 할 대화 상대로 여깁니다.

죽음이라는 거대하고 두려운 추상적 개념을

나지막이 대화할 수 있는 상대로 의인화함으로써,

생의 마무리를 고요하고 평화롭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추상명사를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개념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대화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꾸어 놓았기에

이 시가 우리 마음을 더 포근하게 울리는 것 같습니다.

훌륭한 시선을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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