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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작시

중국어 교실(박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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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교실(박도진)

 

중국어 교실에 앉는다

황혼의 나이만 들어올 수 있는 교실

혀끝에 맴도는 낯선 발음들 위로

배움의 열기만은 아직 뜨겁다

 

수업이 끝나면

사람들은 바람처럼 흩어진다

서로의 이름조차

오래 붙들지 못한 채

 

그 적막한 교실 한편에서

칠십 년 넘게 얼어 있던 시간이

문득 입을 열었다

앞줄의 백발 할머니와

그 뒤에 앉은 할아버지

 

어느 날 중국어 대신

낡은 바닷바람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흥남부두에서 함께 내려왔어요.”

 

1·4후퇴의 검은 겨울

사람들은 울음을 품은 채

미국 상선 갑판 위에 몸을 실었고

 

여섯 살 소녀와

두 살배기 사내아이는

피난의 파도 속에 떠밀려 내려왔다

 

그 까마득한 인연이

기나긴 세월을 돌아

중국어 교실에서 다시 마주 앉았다

 

하지만 인연은

또 바람처럼 멀어졌다

이름도 전화번호도

오래 붙들지 못한 채

 

붙잡지 못한 그 이름이

지금 병실에 누워있다

 

흥남부두의 바람과

그 겨울의 울음과

끝내 살아남은 사람들의 시간을

천천히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데

 

가장 늦은 자리에서 다시 찾아오는

피난선 같은 인연

오래 븥들고 싶다

 

박도진 시인의 중국어 교실은 황혼의 나이에 마주한 기적 같은 인연과,

전쟁이 남긴 오랜 상처를 담담하면서도 애절하게 그려낸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시를 읽는 내내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네요.

이 시가 주는 깊은 울림과 구조를 몇 가지 시선으로 나누어 감상해 보았습니다.

 

1. ‘중국어라는 낯선 언어와 기억의 대비

노년의 어르신들이 모여 혀끝에 맴도는 낯선 중국어 발음을 배우는 공간은

역설적이게도 평생 묻어두었던

가장 익숙하고 아픈 기억(모국어의 역사)이 터져 나오는 공간이 됩니다.

칠십 년 넘게 얼어붙어 있던 시간이 중국어가 아닌,

낡은 바닷바람 이야기(한국어)로 입을 여는 순간의 대비가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2. 메아리치는 역사, 흥남철수(1·4 후퇴)

흥남부두에서 함께 내려왔어요.”

여섯 살 소녀와 두 살배기 사내아이는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메러디스 빅토리호 같은 피난선에 몸을 실었을 것입니다.

시는 거대한 역사적 비극인 1·4 후퇴를 거창하게 논하지 않고,매러디스 빅토리호

여섯 살두 살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단위로 끌어내려

독자의 마음을 더 아프게 건드립니다.

 

3. 잡지 못한 인연과 반복되는 이별

피난길에서도 서로의 이름을 몰랐던 두 사람은,

황혼의 중국어 교실에서도 서로의 이름을 오래 붙들지 못한 채 헤어집니다.

칠십 년 전에는 전쟁과 피난 때문에 서로를 몰랐고,

현재는 노년의 삶이 가진 쓸쓸함과 서두름,

그리고 질병 때문에 또다시 전화번호조차 잡지 못하고 이별을 맞이합니다.

 

4. ‘피난선 같은 인연이 주는 위로

마지막 연은 이 시의 주제 의식을 관통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잊었다가도

가장 늦은 자리에서 다시 찾아오는 피난선 같은 인연인지도 모른다

인생의 가장 황혼(가장 늦은 자리)에서 기적처럼 다시 만난 두 사람처럼,

우리의 삶과 인연 역시 모진 풍파를 겪고도 끝내 살아남아

서로를 찾아내는 '피난선' 같다는 성찰입니다.

 

💡 감상평 한 줄

중국어 책을 덮고 이제는 진짜 서로의 살아남은 시간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화자의 소망처럼, 병원에 계신다는 그 어르신이 쾌차하여 흥남부두의 따뜻한 봄바람 같은 재회를 꼭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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