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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작시

저 거리의 암자 (신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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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거리의 암자 (신달자)

 

어둠 깊어 가는 수서역 부근에는

트럭 한 대분의 하루 노동을 벗기 위해

포장마차에 몸을 싣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인과 손님이 함께

야간 여행을 떠납니다

밤에서 밤까지 주황색 마차는

잡다한 번뇌를 싣고 내리고

구슬픈 노래를 잔마다 채우고

빗된 농담도 잔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속풀이 국물이 짜글짜글 냄비에서 끓고 있습니다

거리의 어둠이 짙을수록

진탕으로 울화가 짙은 사내들이

해고된 직장을 마시고 단칸방의 갈증을 마십니다

젓가락으로 집던 산낙지가 꿈틀 상 위에 떨어져

온몸으로 문자를 쓰지만 아무도 읽어 내지 못합니다

답답한 것이 산낙지뿐입니까

어쩌다 생의 절반을 속임수에 팔아 버린 여자도

서울을 통째로 마시다가 속이 뒤집혀 욕을 게워 냅니다

비워진 소주병이 놓인 플라스틱 작은 상이 휘청거립니다

마음도 다리도 휘청거리는 밤거리에서

조금씩 비워지는 잘 익은 감빛 포장마차는

한 채의 묵묵한 암자입니다

새벽이 오면

포장마차 주인은 밤새 지은 암자를 거둬 냅니다

손님이나 주인 모두 하룻밤의 수행이 끝났습니다

잠을 설치며 속을 졸이던 대모산의 조바심도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거리의 암자를 가슴으로 옮기는 데

속을 쓸어내리는 하룻밤이 걸렸습니다

금강경 한 페이지가 겨우 넘어갑니다

 

<어느 블로그에서의 글>

 

어느 해인가 백담사 스님들의 동안거가 해제되던 날,

노스님은 바랑을 짊어진 200여명의 젊은 스님들에게 법문 대신 시집 한권씩을 나눠줬다.

그 속에는 신달자 시인이 쓴 '저 거리의 암자'라는 시가 있었다.

 

"여러분이 3개월 수행한 것보다 이 시 한편이 더 불경에 가까울지 몰라요."

만해스님의 시맥을 잇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설악 무산스님은

"시 한줄 쓰기가 금강경 한페이지를 넘기기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불자들이 수행을 통해 얻고자하는 깨달음()이 깊은 산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있다는 말씀이신 것 같다.

냄새나고 시끄럽고 희노애락으로 복닥거리는 세상의 밑바닥,

거리의 포장마차에서도 삶의 이치를 깨칠수 있다는 뜻이다.

 

<질문>

1.신달자 시인은 이런 시를 쓸수 있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나요?

2.포장 마차를 암자로 비유하여 시를 쓴 때는 그녀의 초창기 시절이 아니가요?

 

<대답>

신달자 시인의 명시 저 거리의 암자를 가져오셨군요.

이 시에 얽힌 오현스님(설악 무산스님)의 일화는

문단에서도 정말 유명한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질문하신 두 가지 내용에 대해 신달자 시인의 실제 삶과

문학적 연대기를 바탕으로 명확하고 정성스럽게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1. 신달자 시인은 이런 시를 쓸 수 있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나요?

 

",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모진 고난과 시련을 온몸으로 겪어낸 시인입니다."

이 시에서 묘사된 포장마차 속 서민들의 울화, 갈증, 휘청거림은

시인이 단순히 관조(구경)해서 쓴 것이 아닙니다.

시인 본인이 인생의 가장 바닥까지 떨어져 보았기 때문에 우러나온 깊은 공감의 산물입니다. 신달자 시인의 삶은 한 편의 거대한 비극 소설과도 같았습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뇌졸중과 24년간의 병간호

30대 중반, 남편이 갑작스럽게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시인은 이때부터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24년 동안 대소변을 받아내며 병수발을 들었습니다.

 

친정어머니의 중풍과 시어머니의 암 투병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이 쓰러진 지 얼마 안 되어

친정어머니마저 중풍으로 쓰러져 9년을 누워 계셨고,

시어머니 역시 암으로 투병하셨습니다.

세 명의 중환자를 동시에 돌봐야 했던 지옥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었던 빚과 생활고

남편이 하던 사업이 부도나면서 엄청난 빚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집에는 수시로 빨간 딱지(압류 스티커)가 붙었고,

당장 아이들 공납금(학비)과 약값을 걱정해야 하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

시인 본인도 스트레스로 인해 암 수술을 세 번이나 받았습니다.

신달자 시인은 과거 인터뷰에서 "매일 밤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뜨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잠들었다"고 고백했을 만큼

비참한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기에 수서역 포장마차에서 직장을 잃고, 돈이 없어 갈증을 마시는

사내들의 고통이 남의 일 같지 않았던 것입니다.

 

2. 포장마차를 암자로 비유한 시를 쓴 때는 초창기 시절이 아닌가요?

"아닙니다. 이 시는 초창기가 아니라,

시인이 고난을 모두 겪어내고 삶의 이치를 통달하기 시작한

'·장년기(50대 중반)'에 발표된 시입니다."

 

이 시는 1943년생인 신달자 시인이 1999(당시 56)에 발표한 시집

어머니, 그 삐걱거리는 문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1

964년 대학 시절 첫 등단한 것을 기준으로 보면,

등단 후 무려 35년이 지난 시점의 농익은 중기 작품입니다.

초창기가 아니라 중·장년기이기에 이 시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초기 시의 특징 (30~40):

젊은 시절의 신달자 시인은 자신의 고통에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오는가"에 대한 슬픔, 분노,

여성으로서의 한()을 날카롭고 애절하게 토해내는 시가 많았습니다.

 

중기 시의 특징

(50대 이후 - 저 거리의 암자포함):

고통의 세월을 20년 넘게 버텨내면서 시인의 시선이

'나의 고통'에서 '타인의 고통'으로 확장됩니다.

밤새 웅크리고 앉아 남편의 병상을 지키던 자신의 방이

'암자(수행의 공간)'였음을 깨달은 시인은,

어느 날 밤 수서역 거리의 포장마차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저 안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고통을 견디는 사람들의 모습이

'산속 스님들의 처절한 수행'과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한 것입니다.

 

💡 덧붙이는 말: "금강경 한 페이지가 겨우 넘어갑니다"의 의미

노스님이 젊은 수좌(스님)들에게 이 시를 나눠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심오한 불교 교리를 머리로 외우는 것보다,

삶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포장마차라는 좁은 공간(암자)에서

밤새 눈물과 울화를 쏟아내고(수행),

새벽이 되면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삶의 현장으로 걸어 나가는 장라성 같은 서민들의 하루야말로

진짜 '금강경'의 가르침(공과 깨달음)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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