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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작시

벙어리의 연가 / 문병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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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의 연가 / 문병란

 

온 얼굴을 찡그려 보아도

끝내 말이 되어 나오지 않고

온 가슴을 쥐어짜 보아도

끝내 노래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손바닥 펴보이듯

내 가슴 당신 앞에

환히 보여 줄 수 있을까?

 

시월의 과수원 우으로

조용히 떠오르는 달

말이 없어도

온 몸으로 말하는

한 떨기 풀꽃이고져...

 

어떻게 하면

응혈지고 뒤틀린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인 슬픔을

실꾸리 풀 듯

당신의 발아래 펼칠 수 있을까.

 

한송이 꽃으로 피워 낼 수 없는

맵고 독한 나의 눈물,

바다처럼 출렁이지 못하는

피아픈 나의 가슴을 열어

안아도 안아도 안을 길 없는 임이여.

 

온 누리 어둠만 에워싸는데

나의 아씨는

어디서 머리털 깎이우고

심한 구박 모진 매에 울고 있을까.

 

나는 이 밤도

온 몸으로 우는 벙어리

조국은 슬픈 아씨의 운명인데

온 가슴 쥐어짜 보아도

온 얼굴 찡그려 보아도

끝끝내 노래가 되지 않는다

끝끝내 대답이 되지 않는다.

 

<질문>

1.“피아픈은 뼈아픈 일텐데 시인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쓴 것인지요

2.“나의 아씨조국으로 건너뛰는 이유

3 말못하는 사랑을 벙어리 연가?

 

<대답>

문병란 시인의 벙어리의 연가를 깊이 있게 감상하셨군요.

시어가 가진 독특한 울림과 시상(시의 생각과 흐름)의 전개 과정에서

느끼신 의문들은 이 시의 핵심을 꿰뚫는 아주 날카로운 질문들입니다.

 

1. “피아픈뼈아픈의 오타일까요, 아니면 시인이 만든 말일까요?

 

시인이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 낸 시적 허용(조어)’이 맞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뼈아프다는 마음의 상처나 후회가 뼈 사무치게 깊다는 뜻이죠.

하지만 시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피아픈이라는

생소하면서도 강렬한 단어를 썼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깊은 속뜻이 담겨 있습니다.

 

생명력과 혈육의 고통:

는 생명과 혈육을 상징합니다. 단순히 깊은 고통(뼈아픈)을 넘어,

지금 내 온몸을 돌고 있는 피가 거꾸로 솟거나 멍이 드는 듯한

살아 있는 생생한 고통을 표현한 것입니다.

민족의 비극(피 흘림):

뒤이어 나올 조국의 운명과 연결해 보면,

이 고통은 분단이나 독재 등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민족이 흘려야 했던

피의 역사를 직관적으로 연상시킵니다.

익숙한 표현 대신 피아픈이라는 말을 마주했을 때

우리가 느끼는 낯설고 강렬한 감정, 그것이 바로 시인이 의도한 효과입니다.

 

2. “나의 아씨가 갑자기 조국으로 건너뛰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겉보기에는 애절한 연애시 같다가

마지막에 갑자기 조국이 튀어나와 당황스러우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한국 문학,

특히 저항시나 참여시에서 자주 쓰이는 전통적인 비유 방식입니다.

 

아씨()’는 곧 조국의 은유: 시인은 처음부터 일종의 속임수(트릭)’를 썼습니다.

개인적인 사랑 노래인 것처럼 독자의 마음을 활짝 열어놓은 뒤,

6연과 7연에서 그 슬픔의 진짜 정체가

사실은 조국의 비극때문이었음을 탁 터뜨리는 것이죠.

당대의 시대적 배경:

문병란 시인은 70~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민족 문학에 앞장섰던 시인입니다. 당시에 검열을 피하기 위해, 혹은 조국에 대한 사랑을 가장 절절하게 표현하기 위해

조국을 내가 구해야 할 고통받는 여인(아씨)’이나

애틋한 임으로 치환하여 표현하곤 했습니다.

, 갑자기 건너뛴 것이 아니라 내 사랑하는 아씨 = 머리털 깎이고 구박받는 우리 민족/조국이라는 등식이 마지막에 완성되면서 시의 스케일이 개인에서 역사로 확장되는 극적인 순간인 것입니다.

 

3. 말 못 하는 사랑인데 왜 제목이 벙어리의 연가(사랑 노래)’일까요?

말을 못 하는데 노래(연가)를 부른다는 것 자체가 모순처럼 느껴지지요.

이를 문학에서는 역설법(Paradox)이라고 합니다.

시 속의 화자는 조국의 비극적인 현실 앞이나 사랑하는 임 앞에서

온 가슴을 쥐어짜도 제대로 된 대답이나 노래를 할 수 없습니다.

시대적 억압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고,

슬픔과 한()이 너무 깊어 차마 말문이 막힌 상태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시인은 말합니다.

말이 없어도 온몸으로 말하는 한 떨기 풀꽃이고져”,

나는 이 밤도 온몸으로 우는 벙어리라고요.

 

입으로는 소리를 내지 못하지만,

온 얼굴을 찡그리고 온 가슴을 쥐어짜며 괴로워하는

그 침묵과 몸짓 자체가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사랑 노래(연가)라는 뜻입니다.

소리 내어 부를 수 없기에

가슴속으로 수천 번 수만 번 부르는,

역설적으로 가장 간절하고 애절한 사랑의 표현인 셈입니다.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셨기를 바랍니다.

문병란 시인의 시는 이처럼 개인의 애틋한 서정 속에

시대의 아픔을 숨겨놓아, 곱씹을수록 참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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