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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작시

거 미 (이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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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미 (이면우)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오다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욕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 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 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중졸 배관공, 이면우 시인은 어떻게 이런 시를 썼을까?

 

이면우 시인(1951년생)은 말씀하신 대로 '중졸 학력의 보일러 배관공'이라는

문단에서 매우 보기 드문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일찍이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

평생을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보일러를 고치고

배관을 까는 노동자로 살았습니다.

대학 국문과나 문창과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그가

이토록 깊이 있고 절제된 시를 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치열한 독학과 삶의 현장:

그는 낮에는 땀 흘려 노동하고, 밤에는 책을 읽으며 스스로 시를 깨우쳤습니다.

그의 시는 말장난이나 화려한 수사학이 아니라,

손과 발로 살아낸 정직한 노동의 경험에서 길어 올렸기 때문에

도리어 먹물(?)을 먹은 시인들이 흉내 낼 수 없는 단단한 무게감을 가집니다.

 

관찰과 사유의 힘:

보일러 배관을 연결하고 틈새를 메우는 작업은

고도의 집중력과 정밀함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노동의 습관이 사물을 집요하고 깊이 있게 관찰하는

시선(거미줄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선)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거미와 시인의 '동일시'

이 시에서 '거미'는 완벽하게 시인 자신,

혹은 우리 시대 가장들의 초상으로 동일시됩니다.

마흔아홉의 나이:

열아홉이나 이십 대였다면 그물에 걸린 잠자리를 구해주기 위해

그물을 찢어버리는 정의감이나 무모함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마흔아홉(지천명을 앞둔 나이)'이 된 시인은 깨닫습니다.

저 거미 역시 먹고살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밤새

'필사의 그물 짜기'를 한 또 다른 노동자이자 가장이라는 것을요.

 

거미줄과 배관, 그리고 시():

캄캄한 뱃속에서 들끓는 욕망을 짜내어 정교한 그물을 만드는 거미의 모습은,

어두운 골방에서 밤새 갈등하며 한 줄 한 줄 시를 쓰는 시인의 모습과 겹칩니다.

또한, 낮 동안 좁고 어두운 곳에서 배관을 얽고 짜던 시인의 노동과도 닮아 있습니다.

 

결국 시인은 잠자리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넘어,

생존을 위해 그물을 칠 수밖에 없는 거미의 외로움과

필사적인 삶에 깊은 연민과 동질감을 느낀 것입니다.

그렇기에 거미의 사냥을 방해하지 않고,

자신 역시 "채 해결 안 된 사람의 일(생업과 삶의 무게) 속으로"

묵묵히 걸어 들어가는 것으로 시가 마무리됩니다.

화려한 배경 없이도 삶의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묵직한 감동이

바로 이 시의 진짜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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