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산이 좁아서 / 복효근
왼쪽에 내가
오른쪽엔 네가 나란히 걸으며
비바람 내리치는 길을
좁은 우산 하나로 버티며 갈 때
그 길 끝에서
내 왼쪽 어깨보다 덜 젖은 네 어깨를 보며
다행이라 여길 수 있다면
길이 좀 멀었어도 좋았을 걸 하면서
내 왼쪽 어깨가 더 젖었어도 좋았을 걸 하면서
젖지 않은 내 가슴 저 안쪽은 오히려 햇살이 짱짱하여
그래서 더 미안하기도 하면서
<따뜻한 외면/실천문학/2013>
[작품 해설 및 시인 소개]
▶복효근 시인의 “우산이 좁아서”는
곽성숙 시인의 시 강좌에[서 다루어진 작품입니다
그리고 아래의 글은 그 수업시간에 배포된 유인물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작은 것일 겁니다. 하도 시시해서 저게 무슨 시가 되겠나 하는 것이 좋은 시로 탄생 되었을 때 우리는 시와 시인에게 탄복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무릎을 탁 칩니다.
"그래그래, 그렇다니까. 바로 내 말이 그거야." 맞장구가 절로 나오면서 나는 왜 이렇게 시를 쓰지 못했나 아쉬움 가득한 시가 좋은 시 인거지요.
그러나 분명 시는, 언어의 힘은, 그 이상 일 것입니다. 이야기가 작을 때, 별일이 아닐 때, 시시하게도 사소할 때 공감대가 형성되고 큰 울림을 갖는 거지요.
1962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남원에서 중학교 국어교사를 하다 퇴임하고 여전히 남원에서 터를 잡고 살고있는 남원 토종 복효근 시인은 순박하고 부드러운 성정을 지녔습니다.
그의 시어들은 상처를 털고 고개를 드는 아기새처럼 여리거나 눈물이 스며있지요. 그러나 그 상처들을 되살리는 치유의 건강한 힘이 있습니다.
마당에 연꽃이 피거나, 산책하다 도토리를 보거나 숲의 기운을 느낄 때, 작고 순한 일상적인 평온에 행복할 줄 아는 마음이 이 시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자연을 아끼고 사람을 사랑하는 복효근 시인의 잔잔하고 자잘한 다정함이 잘 나타난 시를 읽으면 누구라도 고개가 끄덕여지고 얇은 미소가 따뜻하게 한자락 피어 날 겁니다. 사랑은 그런 거니까요.
남을 배려하는 다정한 마음은 이런 거니까요.
나보다 그 사람이 비에 젖지 않기를,
고슬고슬 해 잘 드는 다무락에 기대
편안하기를 저절로 기도처럼 우러나기 때문이지요.
▶다무락은 전라도 방언이며 “담”은 의미합니다
▶복효근 시인의 시 「우산이 좁아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그의 시작법(詩作法)은 한마디로 '사소한 일상에서 발견하는 숭고한 서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를 바탕으로 복효근 시인이 시를 구성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특징적인 방법들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작고 사소한 것'에 주목하는 발견의 미학
복효근 시인은 거창한 담론이나 무거운 주제 대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나 상황을 포착합니다.
소재의 일상성: '비 오는 날 좁은 우산을 쓰고 가는 상황'은 누구나 겪어본 일입니다. 시인은 이 평범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시적 공간으로 끌어들입니다.
시인의 시선: 남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젖은 어깨, 좁은 우산의 불편함을 '사랑'과 '배려'라는 가치로 치환해내는 예민한 관찰력이 돋보입니다.
2. '대조'와 '역설'을 통한 정서의 극대화
이 시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물리적인 상황과 내면의 감정을 대비시키는 방식입니다.
밖(비바람) vs 안(햇살): 밖에는 비바람이 내리치고 어깨는 젖어가지만, 화자의 마음속(가슴 저 안쪽)은 오히려 '햇살이 짱짱하다'고 표현합니다.
미안함과 행복의 공존: 내가 더 젖어서 상대가 덜 젖었다는 사실에 미안해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역설적인 감정을 통해 이타적인 사랑을 완성합니다.
3. 낮고 겸손한 어조 (낮음의 수사학)
그의 시는 가르치려 들거나 화려한 수식어를 남발하지 않습니다.
구어체와 고백적 어조: "~한다면", "~하면서"와 같은 부드러운 연결 어미를 사용하여 독자에게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들려주는 방식을 취합니다.
시적 화자의 위치: 화자는 자신을 높이지 않고, 오히려 비에 젖는 존재, 미안해하는 존재로 설정함으로써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4. '다정함'이라는 구체적인 힘
복효근 시인의 시작법에서 가장 중요한 뿌리는 '다정함'입니다.
그에게 시를 쓰는 행위는 타인의 고통이나 불편을 내가 대신 짊어지려는 마음의 기록입니다.
"내 왼쪽 어깨가 더 젖었어도 좋았을 걸"이라는 구절처럼, 시인은 구체적인 행위(어깨가 젖는 것)를 통해 추상적인 가치(배려)를 형상화합니다.
요약하자면
복효근 시인의 시작법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사소한 것을 통해, 가장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기교보다는 진심이 담긴 관찰과 타인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그의 시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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