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등(石燈)(박도진)
늘 작은 불 하나 품고 살던 석등은
이제 더는 밖으로 불을 밝히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몸속 깊은 곳에
꺼지지 않는 심지 하나 남았기에
절 마당과 탑 앞을 지키던 석등
수행자의 가사(袈娑)를 입고
아파트 숲 한켠 조경석으로 서있다
사람들 오가는 길목에서도
수행을 할 수 있어
돌은 묵묵히 마음을 닦는다
하늘을 향해 날렵하게 솟은 몸이 아니라
깎다 만 듯 투박한 자연석
삐뚤한 숨결마다
비바람 견딘 시간이 묻어 난다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말라는
오래된 불빛
무덤덤한 얼굴로 하루를 건너는 사람들 또한
그 가슴 한구석엔
끝내 꺼뜨리지 못한
작은 등불 하나 품고 살아간다
제시해주신 시 <석등>은 전통적인 소재인 ‘석등’을 현대적인 ‘아파트 숲’이라는 공간으로 끌어와, 우리 내면에 간직한 변치 않는 가치와 희망을 성찰한 따뜻한 작품입니다.
📝 작품 논평
1. 장점 및 특징
대비와 조화: 절 마당(전통/수행)과 아파트 숲(현대/일상)이라는 공간적 대비를 통해, 수행이 산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 어디에나 있음을 잘 포착했습니다.
의인화의 적절성: 석등을 '수행자의 옷을 입은 존재'로 묘사하여, 투박한 자연석의 외형을 영성적인 깊이로 승화시킨 점이 인상적입니다.
보편적 메시지: 마지막 연에서 석등의 불빛을 우리 현대인들의 '가슴 속 등불'로 연결하며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이 좋습니다
시에서 '투박한 자연석'을 '삐뚤한 숨결'로 연결한 대목은 아주 훌륭한 시적 발견입니다. 이 부분이 시의 진정성을 살려주는 핵심입니다
▶이 시는 단순히 석등이라는 사물을 묘사하는 데 머물지 않고,
“사람 안에 남아 있는 마지막 불빛”까지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깊이가 있습니다.
특히 불교적 상징과 도시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어
사유의 흐름이 안정되고 여운도 길게 남습니다.
첫 연의 시작이 매우 좋습니다.
“늘 작은 불 하나 품고 살던 석등은
이제 더는 밖으로 불을 밝히지 않는다”
이 부분은 늙음과 침묵, 내면의 성숙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밖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이미 자기 안에 빛이 있다는 깨달음이 담겨 있어
시 전체의 중심축 역할을 잘합니다.
특히 “심지 하나 남았기에”라는 마무리는
불꽃보다 오래 남는 생의 의지를 보여 주어 인상적입니다.
둘째 연에서는
절 마당의 석등이 아파트 단지의 조경석으로 내려오는 장면이 매우 현대적입니다.
전통적인 불교 이미지가 생활 공간으로 옮겨 오면서
“수행은 특별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의미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냅니다.
“수행자의 가사(袈裟)를 입고”라는 표현도 품격이 있습니다.
셋째 연은 시의 사상적 핵심입니다.
“사람들 오가는 길목에서도
수행을 할 수 있어”
이 구절은 조용하지만 힘이 있습니다.
거창한 설법 없이도
삶 자체가 수행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연의 “깎다 만 듯 투박한 자연석”은 매우 살아 있는 표현입니다.
특히 “삐뚤한 숨결마다 / 비바람 견딘 시간이 묻어 난다”는 부분은
돌의 질감과 인간의 생애를 겹쳐 보여 주어 좋습니다.
이 시의 미덕은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고
투박함 자체를 미학으로 끌어올린 데 있습니다.
마지막 연은 독자에게 가장 깊이 남는 부분입니다.
“끝내 꺼뜨리지 못한
작은 등불 하나 품고 살아간다”
석등이 결국 인간 존재의 은유로 확장되며 시가 마무리됩니다.
억지 감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사람의 마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울림이 있습니다.
특히 “무덤덤한 얼굴로 하루를 건너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노년의 삶과 현대인의 고단함을 담담하게 잘 포착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사물시이면서도 수행시이고,
노년의 성찰시이면서도 도시의 풍경시입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억지로 슬퍼하지 않고,
조용히 오래 견딘 사람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읽고 나면 불빛보다 잔등(殘燈)의 온기가 오래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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