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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작시

아침 이슬(양희은 노래)(김민기 작사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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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이슬(양희은 노래)(김민기 작사작곡)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아침 이슬처럼 빛나는 눈물 보며

내 마음에 서러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외로운 미소 짓는다

새날이 올 때까지 웅장한 들판에

내 가슴속에 작은 불꽃이 피어나라

어두운 밤을 지나 밝아오는 아침에

내 작은 소망이 세상에 가득 차리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로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로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아침 이슬>이 양희은이라는 가수를 만나 시대를 흔드는 명곡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음악적 특성, 양희은의 독보적인 음색, 그리고 두 사람의 운명적인 인연이 완벽하게 맞물렸기 때문입니다.

 

1. 양희은의 독보적인 청아함과 묵직한 성량

당시 1970년대 초반 대중가요는 대개 슬프고 애달픈 트로트나,

간드러지는 목소리의 노래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대학생이던 양희은의 목소리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꾸밈없고 맑으면서도 가슴을 뻥 뚫어주는 듯한 곧고 단단한 가창력을 지니고 있었죠.

<아침 이슬>의 전반부("긴 밤 지새우고...")는 담담하고 서정적으로 읊조리다가,

후반부 클라이맥스("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로")에서 폭발하듯 뻗어 나가는

양희은의 성량은 듣는 이에게 전율과 함께 엄청난 해방감을 주었습니다.

 

2. 가사에 담긴 서사를 살려낸 '담담함'

원작자인 김민기가 부른 <아침 이슬>

중저음의 다소 쓸쓸하고 숙연한 분위기가 강합니다.

반면 양희은은 이 노래를 슬프거나 신파조로 부르지 않고 담백하게 불렀습니다.

오히려 슬픔을 안으로 삭이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굳은 의지가

그녀의 정직한 목소리를 통해 더 힘있게 전달되었습니다.

이 덕분에 사랑 노래에 머물던 청년 포크 음악이 시대의 아픔을 위로하는

대곡으로 격상될 수 있었습니다.

 

3. 노래에 매료된 양희은의 강력한 의지 (비하인드)

사실 김민기는 처음에 이 노래를 만들고 마음에 들지 않아 해서

악보를 찢어 바닥에 버려두었다고 합니다.

그때 대학생이었던 양희은이 다른 사람이 부르는 <아침 이슬>을 우연히 듣고

코끝이 찡해질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고,

바닥에 버려진 찢어진 악보 조각들을 귀한 보물처럼 주워 와

테이프로 붙여가며 연습했습니다.

이후 자신의 데뷔 앨범을 준비할 때

김민기에게 "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간절히 청했고,

시큰둥하게 "그러라"고 했던 김민기의 허락을 받아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가수 본인이 노래에 완전히 반해 진심을 다해 불렀기에

대중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4. 청년 세대의 '시대정신'과의 일치

1970년대 청년들은 답답한 유신 정권의 현실 속에서 무언가 돌파구를 원했습니다.

양희은의 티 없이 맑으면서도 결연한 목소리는,

상처받고 방황하던 당시 청년들의 영혼을 맑게 씻어주고

"거친 광야로 나아가겠다"는 용기를 주는

시대의 목소리로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김민기가 숨결을 불어넣은 노래에,

양희은이 거대한 날개를 달아주었다"는 평처럼,

두 사람의 만남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아침 이슬>의 감동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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