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자피자 (이유나)
<2026년 경남도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그 많은 상처를 누가 다 먹어 치웠나
나는 늘어질 대로 늘어지는 생각을
손가락 끝에 올려 돌리다가
찢어지거나 터지면 다시 뭉개기를 반복하지
찢어지고 터져야 꽃이 핀다던
당신의 속내를 끝내 모르고
잘 부푼 생각을 펼친다, 얇고 넓게
펼쳐놓은 생각을 정해진 틀의 크기로 자르면
동그랗게 잘린 생각을 기다리는 건 찌르기
바닥을 친 생각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내듯
찌르는 순간엔 감정이 섞이면 안 돼
감정 없이 피를 연기하는 토마토소스
온몸에 펴 발라 진동하는 음모엔
동원되는 공범들이 있지
새우가 세우는 계략을 배후로
페퍼로니 올리브 포테이토 치즈는 듬뿍
조커를 능가하는 치즈에 애정을 담아
달궈진 불가마 속으로 밀어 넣지
뜨거운 건 순간이야, 상처는 쭈욱 늘어나겠지
터진 수포처럼 활화산이 된 상처 위에
파슬리는 독이 될까 약이 될까
병을 줄 때는 약도 준다는 신에게
새벽의 싱싱한 루꼴라를 올릴까 해
방금 딴 방울토마토를 반으로 자르고
초록 들판 위에 꽃처럼 피우면
이때다 싶을 때 마침내 쏟아내는
세상의 모든 상처는 향기롭지
피처럼 달큰하게
꽃을 피우지, 가지가지 상처마다
새들은 몰려와 노래하지
피자피자, 봄봄봄
<시 심사평>
“피자를 통해 이별의 상처 섬세하게 그려내”
‘피자피자’는 먹는 피자와
봉오리가 커지면서 꽃잎이 벌어지는 ‘피자’의 동음이의어 묘미를 살려,
이별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냉정하게 감정을 절제하고 자신만의 사유와 언어를 결합할 때,
맛있는 세상이 시작되기도 하는 것이다.
상처? 흥, 까짓것 먹어 치워버리는 거야, 먹고 소화 시켜버리는 거야,
시크하게 쿨하게, 그리고 다시 꽃 피워 보는거야,
요즘 세대다운 감각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피자피자’를 보낸 분의 또 다른 작품들이,
당선작으로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모두 일정한 수준이라는 것에 의견이 일치되었다.
더 이상 주저 없이 ‘피자피자’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이유나 시인의 〈피자피자〉는
우리가 흔히 먹는 음식인 ‘피자(Pizza)’를 만드는 과정과,
꽃이 활짝 피어나는 상태를 뜻하는 ‘피다(피어라)’의 변형인 ‘피자’라는
동음이의어를 절묘하게 결합한 작품입니다.
심사평에서 언급했듯, 이 시는 이별과 삶의 상처를 진부하게 슬퍼하는 대신,
그것을 짓이기고 구워서 “맛있게 먹어 치워버리겠다”는
하고 감각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시의 핵심적인 흐름과 상징을 세부적으로 나누어 설명해 드릴게요.
1. 제목의 중의적 의미: Pizza와 피어나자
피자(Pizza): 상처와 고통을 반죽하고 토핑을 올려 구워내는 요리.
피자(피어나자): 상처를 딛고 마침내 꽃처럼 피어나자는 삶의 의지.
2. 시의 구조와 의미 분석
1연 & 2연: 상처의 반죽과 깨달음
나는 늘어질 대로 늘어지는 생각을 / 손가락 끝에 올려 돌리다가 ...
피자 도우(밀가루 반죽)를 손가락 끝으로 돌리고 찢는 행위를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뇌와 생각에 비유합니다.
과거에는 "찢어지고 터져야 꽃이 핀다"는 타인(당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반죽이 찢어지고 뭉개지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상처의 필연성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3연: 감정의 절제와 정형화
바닥을 친 생각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내듯 / 찌르는 순간엔 감정이 섞이면 안 돼
피자 도우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포크나 롤러로 구멍을 뚫는 작업(피커 작업)을 묘사합니다.
상처를 다룰 때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냉정하고 덤덤하게(감정 없이) 마주해야 한다는 심리적 절제를 뜻합니다.
4연 & 5연: 상처의 버무림과 불가마(시련)
감정 없이 피를 연기하는 토마토소스 ... 달궈진 불가마 속으로 밀어 넣지
붉은 토마토소스는 '피(상처)'를 연기하고,
페퍼로니, 올리브, 치즈 등의 토핑은 상처를 가리고 채워주는 '공범들'이 됩니다.
치즈를 '조커를 능가한다'고 표현한 것은,
상처를 길게 늘어뜨리면서도
결국은 따뜻하게 감싸 안는 치즈의 양면성을 유쾌하게 비유한 것입니다.
이 모든 상처의 덩어리를 뜨거운 '불가마(고통의 정점)'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6연 & 7연: 상처의 승화와 치유
새벽의 싱싱한 루꼴라를 올릴까 해 ... 세상의 모든 상처는 향기롭지
불가마에서 나온 피자 위에 루꼴라와 방울토마토를 올리는 과정은,
고통을 통과한 뒤 상처 위에 새로운 생명(꽃)을 피워내는 과정입니다.
결국 시인은 아프고 쓰라렸던 상처를 향기로운 요리로 완성해 냅니다. 고통의 산물이었던 상처가 마침내 "피처럼 달큰하게" 피어납니다.
3. 핵심 정리: 이 시가 매력적인 이유
▴상처를 대하는 '요즘 세대'의 쿨한 태도:
슬픔에 눈물 흘리기보다,
그 슬픔을 도우 삼아 치즈와 토핑을 얹어 구워 먹어버리겠다는 발상이 신선합니다.
▴시각과 청각의 조화:
피자가 구워지는 시각적 이미지에서 시작해,
마지막 연의 "피자피자, 봄봄봄"이라는 경쾌한 새들의 노래(말놀이)로 끝나며
슬픔을 완전히 극복했음을 보여줍니다.
▴한 줄 요약
이별과 삶의 상처를 밀가루 반죽처럼 치대고
불가마에 구워 '피자'로 만들어 먹어버린 뒤,
그 자리에 봄꽃을 '피자'고 외치는 당차고 유쾌한 치유의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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